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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펄쩍 뛴 정상회담 격 논란··· '풀 어사이드'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현지시간)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내뱉은 ‘풀 어사이드(pull-aside)’ 한 마디는 한ㆍ미 정상회담의 격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상회담의 형식 자체가 지니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에 꼭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과 참석자 규모 등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린다. 이번에 화제가 된 풀 어사이드 회담, 즉 약식회담과 비교되는 다른 형식은 공식 양자회담(formal bilateral meeting)이다.

공식 양자회담은 말 그대로 격을 갖춰 다양한 현안을 논의하는 본격적인 정상회담이다. 회담장을 미리 잡아 양국 국기, 테이블 등을 세팅한다. 회담 시간도 긴 편이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가 길어지면서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흔하다. 국가 정상이 외국을 방문할 때 이뤄지는 정상회담이 보통 이런 형식이다.

지난 9월 뉴욕 롯데팰리스 호텔에서 공식 양자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다자행사인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 회담이었지만 따로 회담장을 잡고 양국 국기가 게양한 공식 양자회담을 했다. [AP=연합뉴스]

지난 9월 뉴욕 롯데팰리스 호텔에서 공식 양자회담을 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다자행사인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 회담이었지만 따로 회담장을 잡고 양국 국기가 게양한 공식 양자회담을 했다. [AP=연합뉴스]

풀 어사이드 회담은 주로 다자회의에서 이뤄진다. 다자회의에는 많게는 수십 개국 정상이 모이는데 양자 회담을 할 장소를 잡거나 시간을 맞추기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pull aside’라는 표현 자체가 ‘대화를 위해 옆으로 불러내다’라는 뜻이다.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머무는 시간은 만 하루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형식은 정해진 게 없다. 여유가 있는 공간에 의자 몇개만 놓고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고, 다자회의가 진행되는 중에 메인 행사장 밖으로 살짝 빠져나와 복도에 선 채로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풀 어사이드 회담이다. 그런 만큼 회담 시간도 10~15분 정도로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현안보다는 한두개 정도 꼭 논의해야 할 의제에 대한 의견을 간단히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다자회의에서 어느 나라와 공식 양자회담을 하고 어느 정상과 풀 어사이드로 약식 회담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외교 관료들은 길게는 몇달 전부터 여러 기준으로 명단을 추린다. AP통신이 한ㆍ미 정상회담이 풀 어사이드로 이뤄지는 것을 ‘회담의 급을 낮췄다(downgrade)’고 표현하자 청와대는 “다운그레이드의 개념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사실 굳이 격을 따지자면 공식 양자회담이 풀 어사이드 회담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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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줄리앙 스미스 미 신미국안보센터 부수석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다자회의에서 미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하는 경우가 미 대통령이 만나고 싶어하는 정상 수보다 항상 더 많다. 이 때문에 공식 회담을 할지 비공식 면담을 할지 형식을 미리 정해야 하는데, 백악관은 가장 중요한 공식 양자회담을 해야 할 국가들을 먼저 정하고 나서 두번째로 중요한 국가들에 대해 풀 어사이드 회담을 고려한다”고 소개했다. “미 대통령이 누구와 어떤 세팅에서 만나는 지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동맹에 지속적으로 지니는 함의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분류 작업에 몇 달이나 걸리는 것”이라면서다.

이처럼 우선순위에 따라 정상회담의 격과 형식을 달리 하는 것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한 전직 외교관은 “다자회의에 가면 우리 정상을 만나려는 외국 지도자들이 많은데 모두 공식 양자회담을 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연히 우리에게 중요한 국가, 중요한 현안이 걸려 있는 국가 정상과 우선적으로 공식회담을 할 수밖에 없고, 그 다음에 시간과 여건 등을 봐서 맞는 국가 정상과 풀 어사이드 회담을 조율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뉴스1]

청와대 관계자는 또 백악관이 한ㆍ미 정상회담을 풀 어사이드로 하겠다고 한 데 대해 “백악관은 통역만 대동한 양 정상 단독회담의 의미로 한 이야기”라며 “우리도 1대1 단독회담 형식이 훨씬 좋기 때문에 형식을 놓고 조율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언급한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은 참석 인원의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형식이다. 외교가에선 회담 참석자의 규모를 통상 ‘1+N’으로 표현한다. 대통령이 1이고 배석하는 사람의 숫자가 N이다. 예를 들어 통역만 배석하면 ‘1+1’이 되는 것이고, 국가안보실장도 배석하면 ‘1+2’, 거기에 외교장관도 배석하면 ‘1+3’이 되는 식이다. 단독 정상회담은 ‘1+1’로, 사실상 양국 정상 단둘이 만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같은 날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같은 날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단독 정상회담은 배석자도 물린 채 의견을 나눠야 할 매우 예민한 현안이 있을 때 요긴한 형식이다. 정상이 상대국에 양자 방문을 했을 때는 단독 정상회담 뒤 확대 정상회담이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정상 간에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을 먼저 결정한 뒤 담당 관료들이 배석해 논의를 심화, 확장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확대 정상회담에 배석자 수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 ‘1+4~5’ 이상이다.

다만 다자회의를 계기로 한 정상회담에서 단독 회담 형식을 취할 때는 물리적 여건 때문에 확대 회담을 하기 여의치 않아서인 경우가 적지 않다. 장소가 협소해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 없거나 당국자들까지 모여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경우 등이다.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회담했다. 예정에 없던 회담이라 풀 어사이드로 이뤄졌다. 행사장 근처 휴게실에서 쇼파에 앉아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약식회담이었지만, 한국에서는 통역 외에도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배석했다. [청와대 제공]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회담했다. 예정에 없던 회담이라 풀 어사이드로 이뤄졌다. 행사장 근처 휴게실에서 쇼파에 앉아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약식회담이었지만, 한국에서는 통역 외에도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배석했다. [청와대 제공]

풀 어사이드 회담이라고 해서 꼭 단독 회담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과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미리 계획되지 않았던 풀 어사이드 회담을 했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배석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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