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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美서 맨손으로 이룬 '수퍼마켓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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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충분히 쓸 만큼의 돈을 갖고 미국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가진 돈을 몽땅 날리는 경우도 흔하죠. 오히려 가진 돈 없이 맨손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내에서 한인 등 주로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수퍼마켓 체인 '한아름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권일연(權一淵.48)사장이 23일 한국을 찾았다. 그의 방한은 미국 현지의 패션 상품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직접 공급하는 인터넷 쇼핑몰 '뉴욕엔조이(www.newyorknjoy.com)'개설을 위해서다. 뉴욕엔조이는 한아름마트의 유통 능력에 주목한 KT커머스가 사업 제휴를 제안해 만들어진 쇼핑몰이다. 한아름마트는 미국 동부지역에 24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8천4백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1천5백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한아름마트가 처음부터 이런 대형 수퍼마켓으로 시작한 것으로 아니었다.

한아름마트의 첫번째 매장은 뉴욕 외곽지역인 우드사이드에 위치한 1백50평 규모의 자그만한 가게에 불과했다.

"혈혈단신 미국땅을 밟았을 때 저는 스물일곱살이었읍니다. 아는 게 없어서 무서운 것도 몰랐던 시절이라 남보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구매와 판매, 매장 청소와 진열까지 혼자 도맡아 하던 그는 남보다 가게 문을 일찍 열고 늦게 닫아가며 악착같이 일에 매달렸다. 깡패가 권총을 들이대며 돈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무섭다는 생각보다 '저 놈을 잡아서 돈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한번은 돈을 빼앗아 달아나는 범인을 잡겠다며 쫓아가다가 총알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같이 뛰던 직원은 다리에 총알을 맞고 병원으로 실려갔죠."

성실을 무기로 열심히 일한 權사장은 2년 만에 한인들이 모여있는 미국 플러쉬 지역에 두번째 매장을 열었고. 90년대 초에는 뉴욕 지역에만 다섯개의 수퍼마켓을 열었다.

92년부터는 펜실베니아주.버니지아주에도 대형 마트를 열고 미국 동부 전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매장도 1만평 이상으로 넓히고, 채소.생선 등 신선식품을 많이 진열했다. 식품 시식코너를 운영하고 요리교실을 여는 등 미국에서 흔치 않은 마케팅으로 지역 주민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는 시도도 계속했다.

최근 한아름마트는 미국 백인 사회에서도 주목 받는 유통업체로 떠올랐다. 한아름마트가 개장하는 곳마다 지역 언론들이 주요 이슈로 취급하고 있으며 미국 내 경쟁사들은 한아름마트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동양 음식이 건강식으로 인식되면서 한아름마트는 건강식품을 파는 곳으로 미국민들에게 각인됐다. 지난달에는 워싱턴포스트가 이곳에서 파는 제품들을 건강 다이어트 식품으로 소개하면서 그중 하나였던 뻥튀기가 뉴욕커들의 건강 다이어트식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백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매장을 열자 해당 지역사회에서 한글로 쓰여진 '한아름마트'상호를 영어로 바꿔줄 것을 요청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權사장은 "이것은 우리 회사의 고유 로고"라며 그대로 사용할 것을 고집하고 있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이 모두 그렇듯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언제나 갖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사업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고국이 잘 발전해야 해외동포들도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글=박혜민,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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