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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사관학교’ 골드만삭스 불법공매도로 사상 최고 과태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무차입 공매도 사고를 낸 골드만삭스가 75억원 과태료를 맞았다. 불법 공매도 건으로 금융 당국이 물린 과태료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8일 정례회의를 열어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에 75억48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에서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돼 75억원 과태료를 물었다. [중앙포토]

골드만삭스 서울지점에서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돼 75억원 과태료를 물었다. [중앙포토]

공매도는 없는 주식(空)을 빌려다가 먼저 판(賣渡) 다음 일정 기간 후 돈이 아닌 주식으로 되갚는 투자 기법이다. 주당 1000원에 주식을 빌려 팔아 현금을 쥐었는데, 주가가 800원으로 내려가면 주당 800원어치만 갚으면 되기 때문에 200원만큼 차익이 생긴다.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구조다.

이번에 문제가 된 건 무차입 공매도다. 주식을 사전에 빌려놓지도 않고 매도 주문부터 내는 걸 말한다. 주가가 하락하게 조작(시세 조종)하는데 악용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했다가 당국에 지난 6월 적발됐다. 5월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주식을 미리 빌려놓지도 않은 상황(무차입)에서 156개 종목 401억원에 이르는 공매도 주문을 했다.

증선위는 골드만삭스가 법에서 금지하는 무차입 공매도를 한 데(공매도 제한 위반) 대해 74억8800만원, 보유하고 있는 주식 잔고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데(공매도 순보유 잔고 보고 위반) 대해 1680만원 과태료를 각각 부과했다.

공매도 시장은 거래 규모 월 10조원 안팎으로 성장했다. [중앙포토]

공매도 시장은 거래 규모 월 10조원 안팎으로 성장했다. [중앙포토]

이렇게 골드만삭스가 75억원 과태료 ‘철퇴’를 맞았지만 나날이 커지는 공매도 시장을 고려한다면 사실 ‘찻잔 속 태풍’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7일까지 공매도 누적 거래 규모는 코스피 6조9474억원, 코스닥 2조222억원으로 합쳐 9조원에 육박한다. 국내 증시가 폭락했던 지난달 공매도 거래 규모는 13조3051억원(코스피 10조4701억원, 코스닥 2조8350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루 거래 규모가 5000억~6000억원을 오갈 정도로 공매도 시장은 덩치를 키웠다.

전체 주식시장에서 공매도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올 1월 코스피 전체 거래 대금과 견줘 4%대 정도였던 공매도 거래 비중은 지난달 8%대로 치솟았다. 코스피 2000선이 무너지는 10월 폭락장 속에 공매도 투자만 ‘나 홀로’ 활기를 띠었다. 주가가 내려가야 돈을 버는 공매도 투자자에게 지난달 한국 증시는 좋은 먹잇감이었다는 의미다. 이달 들어서도 코스피 시장에서의 공매도 거래 비중은 7%대를 유지하는 중이다.

국내 공매도 시장 규모는 계속 거대해지고 있지만 무차입 공매도, 시세 조정을 노린 공매도 같은 불법을 잡아낼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하다. 금융 당국은 골드만삭스에 75억원 과태료를 물리면서 ‘불법 공매도로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외국인ㆍ기관 투자가에게 전달했지만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한 불만을 가라앉히기엔 충분치 않다.

골드만삭스는 ‘월가 사관학교’로 불리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이지만 서울지점에서 공매도 주문 오류로 결제 때 잔고를 맞추지 못한 ‘초보적’ 실수를 저지른 탓에 적발됐을 뿐이다. 증거도 명백하고 불법 공매도 주문 규모도 명확하기 때문에 당국에서 그를 근거로 수십억 과태료를 매길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증권 배당 사고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금융사에서 잔고에 없는 주식을 만들어 낼 위험은 여전히 있다. 이후에 싸게 사서 주식 수량만 채워놓으면 당국에서 적발할 여지는 적다. ‘나는’ 공매도 시장을 ‘기는’ 금융 당국 규제망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불만은 한층 더 커졌다. 기관ㆍ외국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 신용도, 매매량 탓에 개인이 공매도 시장에 참여하려면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개인의 공매도 거래 비중은 1.2%로 외국인(67.9%), 국내 기관(30.9%)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10월 증시 대폭락 때 ‘외국인ㆍ기관은 공매도로 돈을 버는데 개인은 주가 하락으로 손해만 본다’는 불만이 더 비등했던 이유다.

전문가들은 불법 공매도에 대한 금융 당국의 사전ㆍ사후 감시 수준과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금융투자회사가 무차입 공매도로 적발돼도 과태료나 주의 수준에서 끝났기 때문에 불법 공매도 문제가 발생했다. 법적인 제재 수준을 한층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에서 불법 공매도를 저지른 금융사에 거액 과징금을 부과하고 형사 처벌도 가능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은 자본시장법 개정 ‘추진 계획’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후적인 규제뿐 아니라 불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국은 실시간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당국이 추진 중인 ‘주식 잔고ㆍ매매 수량 모니터링 시스템’이 기술적으로 불법 세력을 걸러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설치 비용 등 새 시스템 도입에 따른 금융업계 내부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간이 상당 기간 소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매도는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문제는 빌려온 주식 없이 매도부터 먼저 하는 무차입 공매도 같은 불법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불법 공매도를 두고 엄격한 규제 체계를 갖추지 않는다면 공매도 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라며 당국의 변화ㆍ노력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조현숙ㆍ염지현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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