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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 중간평가 앞두고 또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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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간평가를 놓고 근 반년가까이 갈팡질팡하던 민정당이 노·김대중 회담으로 겨우 방향을 잡는가 싶더니만 김용갑 총무처장관의 사퇴 등 예상치 못했던 내외의 여건변화로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간평가가 단순한 정책평가로 평가절하된데 대한 여권내부의 반발과 민주당의 예상 밖의 도전, 그리고 불투명한 전·최씨의 증언문제 등이 중간평가의 향방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민정당은 그동안 중간평가를 놓고 현기증 나는 변신을 거듭해왔다.
한때는 아예 안하고 넘어갈듯 싶더니만 갑자기 정면 돌파론이 튀어나오고 최근에는 이도 저도 아닌 정책평가를 한다고 흘리고 있다.
그나마 정책평가를 놓고도 얘기가 왔다갔다한다.
한쪽에서는 『비록 신임을 걸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신임투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실질적 신임 결부론을 펴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명실상부하게 신임이 배제된 단순정책평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논의가 혼란에 빠지자 이종찬 사무총장은 『당으로서는 명목상이든 실질상이든 중간 평가를 신임과 결부되지 않는 단순정책평가로 상정하여 임하겠다』고 교통정리를 했으나 『최종결정은 노 대통령이 하게 될 것』이라고 한 자락 유보를 남겨 놓았다.
민정당이 막바지에 와서 다시 흔들리고 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중간평가에 대한 여권내부의 입장정리가 아직도 명쾌하게 되지 않은데 있다.
노-김대중 회담 후 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회의에서의 결론은 중간평가는 신임과 결부되지 않은 단순정책평가로 치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한 당 내외의 불만이 간단치가 않다.
민정당에서는 김 총무처장관의 돌연한 사퇴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믿고 있다.
사실 그동안 청와대측근들과 민정당 간에는 중간평가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다.
노 대통령을 보좌하는 입장에 있는 청와대측근들은 가능한 한 위험부담이 없는 중간평가를 치르기를 희망했다.
그 결과는 노-김대중 회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반면 여소 야대의 정국에서 연일 실전을 치러야하는 민정당은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더욱이 좌파세력의 급격한 확산으로 체제동요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있는 당과 정부 및 여권 내부의 보수 강경 세력은 말할 것이 없었다.
지지부진한 특위정국을 조속히 마무리짓고 여소 야대의 구조에 충격을 가하고 더구나 점차 심각해 가는 좌경폭력세력에 강력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려면 노 대통령이 비록 위험부담을 안더라도 한판의 승부를 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김 총무처장관이 『중간평가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는 계기를 마련치 못하면 축구에서 패널티 킥을 실축하는 것과 같다』고 불평한 것이 바로 이런 의견을 대변한 것이었다.
김 장관이 민정당의 군 출신의원들과 가깝게 지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어서 김 장관의 행동이 사전 묵계된 것이 아니더라도 이들로부터 심정적 지원을 받고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민정당 내부에서도 원외위원장들 중심으로 『결국 하나마나한 중간평가를 무엇 때문에 애를 쓰고 치르려하느냐』는 불평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며 일부의원들은 선거운동에 들어가기도 전에 『손을 놓아 버리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오는 17일 중간평가 필승을 다짐하기 위해 열리는 지구당위원장 회의에서 자칫 불만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고 보고있다.
그나마 야당과의 관계도 석연치가 않다.
평민당과 공화당은 급한 대로 발목은 잡았으나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렬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태백시 등 소도시에서 수 천명씩의 대중집회가 열린데 대해 마음속으로는 움찔하면서 『조용하게 치르자』는 방침 때문에 대응할만한 대중집회를 가질 것인가의 여부조차 결정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평민·공화당의 처리도 간단치 않다.
이들과 약속한 전·최씨의 증언문체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전씨의 경우 조건만 맞으면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하나 최씨의 경우는 계속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불투명하다.
평민·공화당이 반대투쟁을 않기로 한 약속의 전제조건이 됐던 이 문제가 꼬일 경우 민정당으로서는 막다른 궁지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민주당의 김 총재가 계속 바람을 일으킬 경우 입지가 약해진 나머지 두 야당도 어떻게 태도를 바꿀지 불안하다. 벌써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가 『신임이 연계된다는 얘기만 나오면 나도 반대하겠다』고 심상치 않은 운을 띄우고 있다.
여기에다 여권내부에서 중간평가의 주도권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민정당은 최근까지 국민투표는 당연히 당을 중심으로 치른다는 계획아래 대책본부 등을 결성하고 본부장에 이종찬 사무총장을 내정까지 했었다.
그러나 갑자기 당정을 통괄하는 본부를 구성한다는 청와대의 방침이 밝혀져 당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를 놓고 당에서는 『중간평가의 공을 당내의 특정인에게 주지 않으려는 계획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당정회의에서 한 측근이 당의 정면 돌파론을 「모험주의적 발상」으로 매도했던 까닭도 정면돌파가 성공했을 때 오는 여권 내 세력판도의 변화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노 정부는 안으로는 강경파의 거센 반발을 받고 밖으로는 야당 눈치를 봐야하는 안팎 곱사등이 신세인데 적전의 이 혼란까지 겹쳐 내부조정이 당장의 과제가 되고있다.
여하튼 정부·민정당은 이번 주말까지 중간평가에 대한 최종입장을 결정할 예정인데 현재 잠정 결정된 단순 정책평가방침이 어떤 조정국면을 겪을지 극히 주목되고 있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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