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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생새우,양파도 듬뿍…우리집 김장을 소개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삼식이 레시피(11)

농민들이 김장배추를 트럭으로 옮겨 싣고 있는 모습. 김치는 한국인이 겨울을 나려고 고안해 낸 생존형 음식이지만 맛도 훌륭하고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 미식가를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뉴스1]

농민들이 김장배추를 트럭으로 옮겨 싣고 있는 모습. 김치는 한국인이 겨울을 나려고 고안해 낸 생존형 음식이지만 맛도 훌륭하고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 미식가를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뉴스1]

지난 주말 처제들과 같이 김장을 했다. 60kg을 했으니 한 가족당 10포기를 한 셈이다. 김장하면서 김치라는 게 한국인이 겨울을 나려고 고안해 낸 생존형 음식이지만 맛도 훌륭하고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 미식가를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은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겨우내 오로지 된장과 김치만으로 끼니를 해결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아침을 늦게 먹고 저녁을 일찍 먹는 2끼니만 먹은 적도 있지만 집에서 먹는 밥이 맛없었다는 기억이 없고 배고파한 적도 없는 것 같다. 한국이 워낙 빈곤 국가였던 만큼 배고프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하게 여겼던 시절에 김치만으로도 매 끼니가 행복했다. 김치 자체가 맛있는 음식이라 더욱 그랬다.

오랜 세월 동안 독일인이 한겨울을 소시지로 나는 것처럼 한국인은 김치로 겨울을 버텨왔다. 어떻게 보면 김치나 소시지 모두가 인류의 지혜가 집대성된 음식이다. 독일인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돼지를 열심히 키워 크리스마스 전에 돼지를 잡아 소시지, 햄 등을 만들어 다음 봄이 올 때까지 식량으로 삼는다. 농부들이 사료가 부족해지는 겨울이 되면 사육하던 돼지를 잡아 좋은 부위를 고기로 보관하고 남은 부위는 창자에 넣어 소시지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인도 독일인 못지않게 지혜로웠다고 할 수 있다. 김치는 신선한 채소가 나지 않는 겨울 동안 각종 비타민과 섬유소를 제공하고 부족한 단백질도 보충해준다. 젓갈이 아미노산으로 변해 단백질이 되는 것이다. 발효식품이라 저장성도 강하고 몸에 이로운 유산균도 덤으로 준다.

김장속을 버무리고 있는 모습. [사진 민국홍]

김장속을 버무리고 있는 모습. [사진 민국홍]

김치가 이처럼 인간에 이로운 음식이지만 해 먹기는 만만치가 않다. 특히 60년대 김장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매년 거쳐야 하는 고통스러운 행사였다. 밥과 된장 말고는 먹을 게 없던 그 시절에는 집마다 김장을 300~400포기씩 했다. 그 당시 배추는 속이 많지 않고 실하지 않아 지금 배추의 4분의 1 정도였다. 한 가족이 많으면 지금 배추 기준으로 100포기 정도 한 셈이다.

초등학생인 나의 눈에는 김장할 때면 리어카로 배달받은 배추와 무가 집 마당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느 집이든 가을부터 건 고추를 사들여 방앗간에서 빻아 쟁여 놓고 젓갈이나 소금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는 입동부터 김장을 했다. 온 가족이 매달려 하루는 배추를 절이고 다음 날 일찍부터 온종일 김치를 담갔다.

최근 만난 고모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 집안이 아니라 추운 바깥에서 김장하다 보면 손이 트는 것은 물론 고추를 버무리느라 매우 아려 고통스럽고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는 것이다. 2일간 힘들여 김장해놓아야 한 가족이 춥디추운 한겨울을 나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때 외풍이 심해 자기 전에 방에다 가져다 놓은 물대접이 아침에 일어나면 꽁꽁 얼어 있던 시절이다.

내가 집 밥을 하면서 꼭 김치를 직접 담가 먹고 싶었다. 올봄 오이소박이부터 시작해 배추김치, 열무김치, 양배추 김치 등을 담가 먹고 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김장했다. 부부가 김치를 같이 담그니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둘 사이에 이야기가 많아져 좋았다. 아직 최고의 맛있는 김치를 만들고 있다고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솜씨가 경지에 올랐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집에서 해 먹는 것이 마트에서 사 먹는 김치보다는 나은 것 같다. 김치를 가지고 맛있는 여러 음식을 해 먹다 보니 밥해 먹는 게 행복해진다. 김치는 돼지고기나 꽁치를 넣어 김치찌개를 하고 등갈비 김치찌개를 하면 밥도둑이 된다. 평양식 김치말이도 해 먹고 만두를 만드는 데도 요긴하게 사용한다.

속을 채운 김치를 김치통에 넣고 있다. [사진 민국홍]

속을 채운 김치를 김치통에 넣고 있다. [사진 민국홍]

이번에 30포기 김장을 하는데 처제 2명과 아내와 나 넷이서 주문한 절인 배추를 가지고 4시간 정도가 들어갔다. 생각보다 어렵지가 않았다. 레시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절인 배추 80kg에 무 11개를 준비했다. 고춧가루 4.5 kg, 간 마늘 1.2 kg, 갓 3단, 미나리 한 단, 쪽파 2단, 배와 양파 각각 4개, 낙지 8마리, 생새우 1.5kg, 새우젓 3kg과 멸치 액젓 2kg 등으로 김칫소를 만들었다. 무 1개와 배 4개는 갈아 넣고 찹쌀로 풀을 쒀 추가했다. 나는 인천 소래 포 시장에서 사온 황석어젓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바로 밑 처제가 비린내가 난다면서 반대해 넣지를 못했다.

김장 후 내가 솜씨를 발휘해 돼지 앞다리로 수육을 만들고 묵은 지와 파김치를 넣어 푹 끓인 등갈비 김치찌개를 밥상에 올려놓았고 모두가 맛있게 저녁을 했다. 참으로 보람찬 하루였다.

요즘은 김장할 때 절인 배추를 쉽게 구매할 수 있어 그리 힘들지도 않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 오히려 무생채를 만들거나 속을 버무릴 때 힘이 필요한데, 남자들의 일이라 할 수 있다. 배추 10포기 김장을 하는데 부부 둘이서 3~4시간 정도면 되는데 가족 모두가 겨우내 행복해진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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