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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큰한 대파 육개장… 할머니 추억 담긴 '소울 푸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삼식이 레시피(10)

은근과 끈기 말고 한국을 상징하는 게 있다면 당시 최첨단 공정과 기술을 자랑하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가 아닌가 싶다. 음식에서는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한 한국의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감히 육개장이라고 할 것 같다.

한국 음식의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감히 육개장이라고 할 것 같다. 육개장은 참으로 달달하고 입 안에서 척척 감칠 정도로 맛나면서도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사진은 역삼동 동경육개장. 김경록 기자.

한국 음식의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감히 육개장이라고 할 것 같다. 육개장은 참으로 달달하고 입 안에서 척척 감칠 정도로 맛나면서도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사진은 역삼동 동경육개장. 김경록 기자.

육개장은 참으로 달달하고 입 안에서 척척 감칠 정도로 맛나면서도 조상들의 지혜가 창의적으로 발휘된 음식이다. 쇠고기, 대파, 고사리, 고추, 마늘 등 각각의 재료가 장시간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 하나로 융합되면서 전혀 다른 음식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나는 육개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예찬론자까지는 아니었다. 어릴 때 할머니가 해주던 대파 육개장은 그 맛이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고 있지만 사회에서 접한 육개장은 너무 허접했다.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면 어디에서나 양지나 사태 부위의 소고기에 고사리, 토란 줄거리, 숙주 등을 넣어 끓인 고추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육개장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 맛은 대개 쌉쌀하면서도 텁텁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2007년 개봉된 영화 ‘식객’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육개장이라고 소개되는 대목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이 영화는 한국의 최고 음식 맛을 자랑하는 음식점으로 운암정을 설정하고 제자 중에서 이곳의 대를 잇는 단 1명의 최고의 세프를 뽑는 음식대전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은 신토불이 재료인 고사리를 사용하는 육개장을 끓여 최종 우승자로 등극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장례식장의 허접한 고사리 육개장을 먹던 기억이 겹쳐져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 보면 생각의 대반전이 일어나기 마련. 올해 들어 집에서 음식을 하면서 할머니가 해주던 육개장을 꼭 재현하고 싶었다. 달콤하고 고소해 폭풍흡입을 했던 음식에 대한 기억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모를 대신해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너무도 그리워서 그랬다. 할머니는 너무도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고 지극히 나를 사랑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매일 1시간 이상씩 밥상머리에 앉아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영화 '식객'의 한 장면. 최고의 음식 맛을 자랑하는 운암정의 대를 잇기 위해 음식에 마음을 담는 '성찬(김강우 분)'과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 '봉주(임원희 분)'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결을 한다. [중앙포토]

영화 '식객'의 한 장면. 최고의 음식 맛을 자랑하는 운암정의 대를 잇기 위해 음식에 마음을 담는 '성찬(김강우 분)'과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 '봉주(임원희 분)'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결을 한다. [중앙포토]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저녁밥을 물리면 밥상이 책상이 되었다. 머리 좋은 유전자를 물려 준데다 공부하는 습관까지 들어 1등을 놓치는 법이 없을 정도로 늘 공부를 꽤 잘했다. 초등학교 4학년 가슴막염(일종의 폐결핵)을 앓아 반에서 6등으로 내려앉은 적이 있는데 할머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자 그가 책가방을 마당으로 던지더니 “너는 오늘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똥지게나 져야겠다”라고 혼내 눈물 콧물이 쏙 빠지도록 울던 것이 기억난다.

60년대는 수세식이 없어 화장실의 변은 지게꾼이 퍼 날라 치웠다. 이게 살면서 단 한 번 혼난 기억이다. 그 뒤로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빈한한 가정에서 과외 없이 최고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들어가게 됐으니 그에 대해서는 아직도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모든 게 할머니의 심모원려였다. 그가 4살 때 뇌막염에 걸려 청각 기능과 언어기능을 상실한 자신의 장남인 아버지의 일생을 나를 통해 책임진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나를 훈육하고 키웠던 것이다. 할머니는 은근과 끈기로 상징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는데 손자교육에 성공했고 나는 할머니의 뜻을 잘 이해하고 그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육개장도 그의 대표적 음식 중 하나였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가 해주던 육개장을 해보리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지난 8월 중부 여성 발전센터에서 임인숙 조리장의 특강에 참가해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음식을 완성하는데 거의 3시간이나 걸리고 조리법이 복잡했다. 이러니 육개장 과목이 한식 조리자격을 주는 시험과목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 같고 요리학원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에게는 육개장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임 조리장은 고사리, 숙주, 느타리버섯, 대파를 넣는 레시피를 가르쳐주었지만 나는 대파만으로 육개장을 하고 싶었다. 6인분 기준으로 준비물은 쇠고기(양지) 400g, 대파 1단, 마늘 6쪽, 다진 마늘과 다진 파, 고춧가루, 식용유 각각 4T, 국간장과 참기름 각각 2T.

양지와 대파 흰 부분을 미리 손질해 놓는다. [사진 민국홍]

양지와 대파 흰 부분을 미리 손질해 놓는다. [사진 민국홍]

우선 대파 1단을 손질한 뒤 흰 부분과 초록색 부분을 분리해 먹기 좋은 만큼 5cm 정도로 썰어놓고 초록색 부분을 끓는 물에 데친다. 핏물을 뺀 양지를 대파 한단의 흰 부분, 마늘 6쪽과 함께 넣어 2~3시간 푹 끓여준다. 고기는 익힌 뒤 먹기 좋을 크기로 찢어 놓는다.

양지와 대파를 넣고 2시간 푹 끓인다. [사진 민국홍]

양지와 대파를 넣고 2시간 푹 끓인다. [사진 민국홍]

다음으로 각각 2T의 다진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에 식용유를 섞어 고추·파·마늘 기름을 만든다. 데친 초록 부분 대파와 찢어 놓은 양지에 고추·파·마늘 기름,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국간장 각각 2T를 넣어 양념이 잘 배도록 조물조물 무쳐준다. 이를 모두 끓이던 냄비에 넣어 30분간을 더 끓이면 끝이다. 이렇게 하면 거의 고추기름이 떠다니지 않고 모든 재료에 녹아 들어간다.

파, 마늘, 고추로 고추기름을 만든다. [사진 민국홍]

파, 마늘, 고추로 고추기름을 만든다. [사진 민국홍]

찢은 양지와 대파에 고추기름, 간장,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사진 민국홍]

찢은 양지와 대파에 고추기름, 간장,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사진 민국홍]

먹어보니 할머니가 해주던 그 맛 이상이다. 맛이 강하지는 않지만 그 달달함과 고소함이 은근하게 혀를 따라 온몸으로 퍼지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진다.

나를 키워준 할머니 생각에 그리움까지 더해 어느새 육개장 예찬론자가 되었다. 육개장은 데치고 끓이고 고추기름 내어 무치는 등 요리법의 종합이다. 대파 흰 부분은 쇠고기의 기름을 먹어주고 단맛을 토해낸다. 재료에 녹아들어 간 고추기름은 칼칼한 맛을 더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균형을 잡아준다. 한국이 자랑할 만한 음식이다.

육개장과 와인도 잘 어울린다. [사진 민국홍]

육개장과 와인도 잘 어울린다. [사진 민국홍]

추서 : 정통적인 육개장을 끓이려면 쇠고기 400g에 고사리, 숙주, 대파, 느타리버섯 각 120g씩을 준비한 뒤 조리법은 똑같이 하면 된다.

[정리] 육개장 만드는 법

[재료]
(6인분 기준) 쇠고기(양지) 400g, 대파 1단, 마늘 6쪽, 다진 마늘 4T, 다진 파 4T, 고춧가루4T, 식용유 4T, 국간장 2T, 참기름 2T.

[조리순서]
1. 대파 1단을 손질해 흰 부분과 초록색 부분을 분리하여 5cm 정도로 썰어놓고, 초록색 부분을 끓는 물에 데친다.
2. 핏물을 뺀 양지를 대파 1단의 흰 부분, 마늘 6쪽과 함께 넣어 2~3시간 푹 끓여준다.
3. 고기는 익힌 뒤 먹기 좋을 크기로 찢어 놓는다.
4. 다진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각각 2T에 식용유를 섞어 고추·파·마늘 기름을 만든다.
5. 데친 초록 부분 대파와 찢어 놓은 양지에 4와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국간장 각각 2T를 넣어 양념이 잘 배도록 조물조물 무쳐준다.
6. 이를 모두 끓이던 냄비에 넣어 30분간을 더 끓인다.
*전통적인 육개장을 끓이려면 쇠고기 400g에 고사리, 숙주, 대파, 느타리버섯 각 120g씩 준비한 뒤 똑같이 조리하면 된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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