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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근로자들 "일한 만큼 받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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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9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가 열린 3대혁명전시관에서 북한 기업의 광고판을 주민들이 보고 있다. 평양 거리에도 2003년부터 상품광고가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평양 고려호텔 앞 도로를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걸어가고 있는 러시아계 여성들을 주민들이 신기한 듯 보고 있다. 평양=특별취재단

지난달 17일 오전 제9차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가 열린 평양 3대혁명전시관.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조선부강회사 부스의 류송임(23) 판매원은 "이곳에서는 10% 눅은(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시지 않으면 후회합니다"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 연두색.분홍색 등의 화려한 한복에 목걸이.귀고리 등으로 한껏 멋을 낸 각 회사의 도우미들이 손님을 끌기에 열심이다. '안 사면 그만' 식의 과거 판매방식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주전자와 핸드백 등을 전시한 중국 기업의 부스에서는 평양 시민들이 달러를 꺼내 물건을 샀고, 교복 차림의 10대 여학생들은 중국제 MP3 플레이어를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외화를 정기예금으로 받겠다'는 제일신용은행의 광고판과 '우리나라 첫 현금카드 발행'이란 동북아시아은행의 안내문도 있었다.

전시관 입구에는 여러 회사의 대형 광고들도 늘어서 있었다. 올해 1월 설립된 조선광고회사가 제작한 첫 광고제품들이다. 상품과 무역광고 업무를 전담하는 조선광고회사는 정부기관. 국내외 기업.단체.개인을 대상으로 광고를 주문받아 제작.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품 마케팅'에 눈을 뜬 것이다. 2002년 7월 1일 '번 수입에 의한 평가' '생산자 위주의 가격 조정'을 골자로 하는 '사회주의경제 관리개선 조치'(7.1조치)가 실시된 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다.

초기에 변화를 선도한 것은 서비스 분야. 남쪽 손님의 입맛에 맞게 자체 생산한 '수정술'과 봉사원의 공연으로 인기를 얻은 민족식당, 부위별로 특색 있는 음식을 개발한 평양오리고기전문점 등 평양의 식당과 상점들은 수익 증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지난달 14일 만난 낙랑구역 통일거리 오리고기전문점의 접대원 김미란(40)씨는 "손님이 많을수록 생활비(임금)도 그만큼 올라간다"며 "친절한 봉사와 다양한 음식으로 손님 접대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7.1조치 4년이 지나면서 상점.식당뿐 아니라 이제는 공장.농장까지 '일한 만큼, 번 만큼' 분배받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 확연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방문한 평양3월26일전선공장.평양화장품공장.대안친선유리공장 등 모든 공장에는 근로자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매일 매일의 실적을 표시하는 '사회주의경쟁도표'와 '노력일 실적공시판'이 붙어 있었다. 노동자는 결근하거나 기술학습시간에 빠지면 그만큼 임금이 깎인다고 한다.

기업도 당국이 정해준 계획 목표량 달성이 아니라 생산 제품을 국가기관이나 국영상점.시장에 판매한 '번 수입'으로 평가하고 이에 따라 근로자 임금도 차별 지급된다. 이를 위해 북한 당국은 공장.기업의 경영자율권을 확대했다. 공장.기업에 금액상 목표만 제시하고 계획을 초과하는 생산물 일부의 임의처분을 허용했으며 기업들이 서로 합의한 가격에 물자를 거래하는 것도 허용했다. 특히 공장지배인에게 근로자 정원의 20% 범위 내에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방문한 평양자동화기구공장 왕춘남(46) 기사장은 "공장에 맞는 기대공(기능공) 양성을 위해 근로자 재교육을 위한 공업대학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국가가 준 계획을 양적으로 달성하기만 하면 됐던 '수치목표 경제'에서 추가로 실적을 내야 하는 '실리 경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보장하도록 경제를 관리 운영'할 것을 강조해 '사회주의와 실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 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졸업한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학생들이 대학 창립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논문도 '계획경제와 시장의 결합에 대한 연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주의(계획)와 실리(시장) 중에서 변화의 축은 실리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평양=특별취재단

평양 특별취재단

▶취재 강영진.김영욱.안성규.홍병기.유철종.정용수 기자 ▶사진 신동연.김춘식 기자 ▶자문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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