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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vs 카드사 근로자···정부 '을의 전쟁' 부추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신용카드 수수료를 인하하기로 하면서 ‘을 대 을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도울 목적으로 시행되는 이번 정책이 카드사 직원들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어서다. 벌써부터 카드업계에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카드수수료 개편방안 당정협의 회의장에 진입을 시도하다 국회 관계자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20181126.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카드수수료 개편방안 당정협의 회의장에 진입을 시도하다 국회 관계자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20181126.

금융위원회는 26일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을 발표하고 현행 연 매출 5억원 이하인 우대수수료율 적용 가맹점의 범위를 내년 1월 말부터 연매출 30억원 이하로 확대키로 했다. 신설되는 우대수수료 적용 구간은 연매출 5~10억원 구간과 10~30억원 구간으로, 이들은 각각 0.65%포인트ㆍ0.61%포인트 인하된 1.4%ㆍ1.6%의 수수료율을 적용받는다.

26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당정 협의에서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금융위원회>

26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당정 협의에서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금융위원회>

금융위는 이번 개편안을 통해 연매출 5~10억원 가맹점 19만8000여곳은 연간 147만원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게 되며 연매출 10~30억원 가맹점 4만6000여곳은 연간 약 505만원의 카드수수료 부담을 덜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들의 수수료 절감액은 총 5233억6000만원 수준이다.

실제 영세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은 최근 급격하게 오른 인건비와 임대료, 내수 부진 등을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보다 크게 줄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3000여명(0.3%) 줄었으며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10만1000여명(2.5%) 줄었다.

이번 카드수수료 개편안을 통해 이들 자영업자가 연간 147만원에서 505만원의 카드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있다. 금융위가 지적했듯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원인은 내수부진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인건비 및 임대료 비용 인상 등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동작구에서 3년간 주점을 운영하다 최근 폐업한 황모(31)씨는 "자영업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건 인건비다. 최저임금이 내년에도 또 오른다는데 과거 오름폭과 최근 오름폭은 그 수준이 완전히 달라서 섬칫할 정도로 부담이 된다"며 "정부가 카드수수료율을 조금 깎아준다고 해도 정작 생업을 접을지 말지 고민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와닿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사들에겐 엄청난 부담이 된다. 금융위가 이번 개편안을 통해 책정한 총 가맹점 수수료 인하분은 연간 8000억원 규모다. 2007년부터 지난 7월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느라 만성적인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카드사들은 그야말로 '죽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7개 전업계 카드사(신한ㆍKB국민ㆍ삼성ㆍ현대ㆍ하나ㆍ우리ㆍ롯데)가 제출한 분기보고서 따르면 이들 카드사는 올해 3분기까지 1조283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1조7235억원) 보다 25.52% 줄어든 수치다. 이제 카드사들은 연간 8000억원에 달하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분을 추가로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업계엔 구조조정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달 초 창사 후 첫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현대카드가 대표적인 예다. 올해 상반기 보스턴컨설팅그룹(BCG)으로부터 경영체질 개선을 위한 컨설팅을 받은 현대카드는 현대카드에서 200명, 현대캐피탈과 현대커머셜에서 각각 100명씩 총 400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키로 했다.

구조조정 칼바람은 다른 회사로도 쉽게 번질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카드사 관계자는 "영업환경에 대한 부담이 지속될수록 회사 입장에선 비교적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인건비를 가장 먼저 손댈 수 밖에 없다"며 "업계 상위사 중 한 곳인 현대카드가 창사이래 첫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것은 업권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결국 카드업계 노동자들이다. 자영업자들을 살리겠단 취지의 카드수수료율 인하 결정이 결국 카드업계 노동자들에게 칼끝을 돌리는 '을 대 을의 갈등'으로 비화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카드사 노동조합 단체인 '금융산업발전을 위한 공동투쟁본부'는 이날 카드 수수료 개편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 진입을 시도하다가 저지당하기도 했다.

공동투쟁본부는 "대형가맹점 수수료 인상과 하한선 법제화 없는 이번 개편안은 결국 카드사, 영세·중소가맹점, 국민 등 이해당사자 모두가 피해를 볼 것이 명백하므로 즉각 철회하고 합의문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라"고 촉구하며 "우리는 총파업을 불사한 대정부 투쟁으로 질기게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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