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극비 팀서 곤 회장 비리 조사"힘 얻는 닛산 쿠데타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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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와 닛산자동차를 함께 이끌던 카를로스 곤(64) 회장이 소득 축소 신고 등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된 사건과 관련,일본 언론들이 25일 “닛산이 올 봄부터 극소수로 구성된 비밀팀을 꾸려 사내 조사를 벌여왔다”고 보도했다.

르노출신 아닌 일본인 CFO 등장에 본격화 #프랑스 “닛산 살려줬는데 은혜도 몰라” #NHK "곤 회장, 검찰수사에서 혐의 부인"

곤 회장의 체포에 그를 회사에서 몰아내려는 닛산 내부 일본인 임원들의 쿠데타적 발상이 배경에 깔려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내용이다.

22일 닛산 이사회에서 해임된 카를로스 곤 회장[EPA=연합뉴스]

22일 닛산 이사회에서 해임된 카를로스 곤 회장[EPA=연합뉴스]

도쿄신문에 따르면 닛산 내부에 "곤 회장이 회사 자금을 부당하게 쓰고 있다"는 의심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카리스마 리더’로 불리며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던 곤 회장을 건드렸다간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모두가 쉬쉬했다.

하지만 그동안 르노에서 파견된 외국인들이 주로 맡아왔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올 5월 일본인이 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재무분야의 담당자들이 바뀌면서 곤 회장의 부적절한 회사 돈 지출문제가 확연히 드러났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이후 닛산 내부엔 일부 간부들이 포함된 조사팀이 구성돼 곤 회장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 했다. 곤 회장이 증거를 인멸할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에 조사는 극비리에 진행됐고, 6월부터는 대형 로펌도 합류해 증거 확보에 나섰다는 게 도쿄신문의 보도다.

NHK는 도쿄신문이 보도한 5월보다 조금 빠른 3월에 조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3월에 시작된 조사가 진전되면서 6월께 검찰과 관련 내용을 상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쨋거나 올 봄 부터 조사가 시작됐다는 데엔 NHK와 도쿄신문의 보도가 일치했다.

여기엔 르노와의 경영통합 문제도 걸려 있었다. 곤 회장은 올 3월 이후 닛산 주식의 43.4%를 보유한 르노와 닛산의 통합에 의지를 보였다. 그래서 닛산 내부에선 “곤 회장이 올해안에 통합 논의를 본격화할 것”이란 소문이 퍼지며 “이러다 닛산이 르노에 완전히 종속되겠구나”는 위기감이 증폭됐다.

도쿄신문은 “르노와의 통합을 경계하며 닛산측이 곤 회장의 해임을 서둘렀다”고 분석했다.

곤 회장은 22일 닛산의 이사회에서 해임됐지만 르노에선 아직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닛산에 대한 반감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닛산 토박이 경영진에 의한 쿠데타 음모라는 보도가 프랑스에서 잇따르고 있어 여론의 동향에 따라선 외교문제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기자회견에서 곤 회장의 부정 행위를 공표했던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닛산 사장을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에 빗대는 기사에 이어 프랑스 언론들은 “일본인들은 은혜를 모른다”는 국민들의 불만을 전하고 있다.

닛산자동차의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이 19일 밤 요코하마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곤 회장과 대립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곤 회장을 22일 이사회에서 해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닛산자동차의 사이카와 히로토 사장이 19일 밤 요코하마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곤 회장과 대립해온 것으로 알려진 그는 곤 회장을 22일 이사회에서 해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 1999년 닛산이 최악의 경영난에 빠졌을때 르노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구해줬음에도 이제 와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불만이다.

도쿄구치소에 수감된 곤 회장에 대해선 “지옥과 같은 환경”이라는 동정론도 일고 있다고 한다.

 곤 회장과 함께 체포된 닛산의 그레크 켈리(62) 대표가 주변에 “곤 회장의 소득 신고는 사내 간부들과 상담해 적절하게 처리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논란은 더 확산될 조짐이다. 그를 접견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25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NHK는 "곤 회장 본인도 검찰조사에서 '보수를 적게 신고할 의도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지지통신은 “22일 파리에서 열린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의 회담에서 ‘민간기업의 일은 정부가 간섭하지 말고 기업에 맡기자’는 데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주식 15.01%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과거 르노와 닛산의 통합을 강하게 주장했다. 향후 프랑스 정부의 태도에 따라 정부간 외교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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