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판 오렌지 혁명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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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젊은이들이 청바지에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고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피켓의 숫자 5는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선거구를 5개로 줄이자는 의미다. [쿠웨이트 NGO제공]

"우리도 우크라이나처럼 해낼 수 있다."

걸프지역 최초로 민주화 운동에 나선 쿠웨이트 젊은이들도 오렌지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요즘 쿠웨이트 길거리에는 오렌지 색 티셔츠.목도리.리본이 가득하다. 여대생들도 히잡(이슬람 여성 머리두건)을 벗어던지고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이미 현지에서는'오렌지 운동' 또는 '오렌지 혁명'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쿠웨이트를 위한 5'라는 구호가 이들의 정치적 모토다. 현재 25개인 총선 선거구를 5개로 줄이자는 주장이다. 선거구를 광역화해야 나눠먹기식 부족정치와 검은 돈이 판치는 부정선거 여지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5라는 숫자를 강조하기 위해 첫 집회를 5월 5일 정부청사 앞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는 500여 명의 젊은이 외에 노인.아이들도 오렌지 리본을 달고 참석했다.

오렌지 혁명은 '쿠웨이트를 위한 5'라는 이름의 청년단체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웹사이트(www.kuwait5.org)를 운영하면서 휴대전화 문자 서비스와 블로그로 연락을 취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고 있다. 회원 수는 5월 말 현재 1500명 선. 지난달 19일에도 쿠웨이트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구호는 더 과격해졌다. '부패한 정부를 타도하자'였다.

쿠웨이트판 오렌지 혁명을 우려한 정부도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21일 셰이크 사바 알아마드 알사바 국왕은 내년 7월로 예정된 총선을 이달 29일 앞당겨 실시키로 하면서 의회 해산을 명령했다. 선거구 개혁안을 둘러싼 국론 분열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정부는 젊은이들과 개혁파 의원들의 요구에 밀려 선거구를 10개로 줄여 광역화한다는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쿠웨이트는 지난해 여성의 참정권은 허용했지만 아직까지 정당의 합법화를 인정하지 않는 민주주의 후진국이다. 쿠웨이트의 운동권은 총선을 계기로 한층 적극적으로 정치개혁을 요구할 계획이다. 선거구 광역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선도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칼리드 알파달라(29)는 "걸프지역에서도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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