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받은 과태료 1조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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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 회사원 김모(38)씨는 최근 2~3년 동안 과속으로 차를 몰다 다섯 차례 무인카메라에 찍혔다. 그때마다 과태료 통지서를 받았다. 기한 내에 납부하면 최고 6만원, 기한을 넘기면 1만원이 더 붙지만 무시해 왔다. 통지서엔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차가 압류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별 일 없었다. 김씨 차에는 현재 20만원이 넘는 과태료가 걸려 있다.

#2.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구미IC를 1.7㎞ 지난 지점에 무인카메라가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3만6871건을 찍었다. 과태료 최하 기준(시속 20㎞ 이하 초과 3만원)을 적용해도 이 카메라는 11억600만원의 과태료를 물렸다. 그러나 실제 과태료 징수액은 얼마인지 모른다. 아예 안 내는 사람이 많아서다.

이처럼 과속.신호위반 차량에 부과됐지만 걷히지 않은 과태료가 지난해 말로 1조원을 넘었다. 감사원의 경찰청 감사결과다.

경찰은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자동차 등록서류에 모두 기재된다. 이를 해결하기 전에는 차를 팔거나 폐차할 수 없다. 그러니 과태료를 다 걷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지난해 감사원은 전국 13개 경찰서를 표본조사했다. 여기서 경찰의 압류요청 중 절반 이상이 요건 미비로 무효 처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압류요청을 하기 전에 차주인이 차를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경찰은 과태료를 받을 길이 없다.

택시나 버스는 출고 후 일정 기간(차종별로 3년6개월~10년6개월)이 지나면 등록서류 자체가 말소된다. 압류등록도 자연히 원인무효가 된다. 또 과태료가 아무리 많이 부과됐어도 차주인의 다른 재산에 대해선 아무 조치를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과태료가 누적된 차량을 그냥 길가에 버리는 경우도 많다. 경찰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과태료를 10회 이상 상습 체납한 운전자는 32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체납한 과태료 총액은 4100억원이다.

◆ 장부 숨기기=경찰은 해마다 결산 때 과태료 미납액이 전혀 없다고 보고해 왔다. 방법은 간단하다. 받을 돈 중 실제 납부된 돈만 회계처리 하면 된다.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하면서 동시에 받을 돈으로 회계처리 해야 하지만 이를 미룬 것이다. 지난해 경찰이 감사원에 제출한 결산보고서에 과태료와 범칙금 부과액은 6384억원이었지만 미납액은 없었다.

경찰은 과태료 미납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외부에서 감시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 과태료를 냈는데도 경찰이 다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차량을 압류한 사례가 지난 4년간 100만 건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행 시스템은 누군가 과태료를 받은 뒤 이를 장부에 기재하지 않으면 전혀 밝혀낼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정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미납액이 정확히 얼마인지 공개하고, 투명하고 적법하게 회계 처리를 하라"고 경찰에 통보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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