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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낙엽 지는 그 숲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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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낙엽 ( ) 그 숲속에 파란 바닷가에/ 떨리는 손 잡아 주던 너/ 별빛 같은 눈망울로 영원을 약속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던 너~

괄호 안에 들어갈 낱말로 적절한 것은?

ㄱ. 떨어지는 ㄴ. 지는

물론 노래 가사를 아는 분은 당연히 ‘지는’을 골랐을 것이다. 1970년대 유행했던 이종용의 ‘너’라는 곡의 앞부분이다. 혹 가사를 모르는 사람 가운데는 ‘ㄱ. 떨어지는’을 고른 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상에서 ‘낙엽이 떨어진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요즘 곱게 물들었던 잎들이 가을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사진과 함께 관련 글을 올리는 사람이 많다. ‘가을비에 떨어지는 낙엽’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등의 글이 보인다. 대체로 ‘낙엽’에는 ‘떨어진다’는 표현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낙엽(落葉)은 나뭇잎이 떨어짐 또는 떨어진 나뭇잎을 뜻한다. 단어 자체에 ‘떨어지다(落)’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낙엽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겹말이다. 겹말의 요소를 피하기 위해서는 ‘낙엽이 진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떨어지다’나 ‘지다’가 의미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낙(落)’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떨어지다’보다 그냥 ‘지다’가 낫기 때문이다. 앞의 노래 가사도 ‘ㄴ. 지는’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 만약 굳이 ‘떨어진다’ 표현을 쓰려면 ‘낙엽’을 ‘잎’으로 바꾸어 ‘잎이 떨어진다’는 형태로 하면 된다.

이처럼 앞말이 가진 고유한 의미 때문에 뒷말이 제약받는 것을 ‘의미상 선택 제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기(電氣)가 누전됐다’ ‘피해(被害)를 입었다’ ‘돈을 송금했다’ ‘작품을 출품했다’ 등이 이런 경우로, 앞뒤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의미 중복이 발생하므로 각각 ‘전기가 샜다’ ‘피해를 보았다’ ‘돈을 보냈다’ ‘작품을 냈다’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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