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반증’인가, ‘방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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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얼마 전 2019학년도 수능이 치러졌다. 올해는 대학 입시에 대한 불신이 여느 때보다 높아졌다.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태로 인해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입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요구도 적지 않다. 일부는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반증”이라며 공교육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어떤 사실에 대해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낼 때 이처럼 ‘반증’이라는 단어를 쓰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방증’이 맞는 말이다. ‘방증’과 ‘반증’은 단어의 모양과 발음이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 단어다.

‘방증’은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주변의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에 도움을 주는 증거를 뜻한다. 따라서 “내신 관리가 엄격한 학교에서조차 비리가 발생한 것은 내신비리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방증이므로 전국 모든 고등학교의 내신비리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반증’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인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것을 반증할 만한 증거가 없었다” “그의 주장은 논리가 워낙 치밀해 반증을 대기가 어렵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방증’과 ‘반증’의 한자어 구성을 살펴보면 두 단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반증(反證)’은 ‘뒤집을 반(反)’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반대되는 증거’의 경우 ‘반증’을 쓰면 된다.

‘방증(傍證)’은 ‘곁 방(傍)’자를 써서 ‘곁에 있는 증거’, 즉 주변에 있는 증거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정황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를 가리킨다.

서두에 나오는 예문의 경우 반대되는 증거를 의미하는 게 아니므로 “이번 사태는 우리나라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방증”이라고 해야 바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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