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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법관들 몸에 밴 성차별의식, 경력 쌓일수록 굳어질 위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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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05면

로스쿨생의 성범죄 판단

지난 15일 김상준 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 대표변호사는 ’특정 판사의 잘잘못이 아닌 교육과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성범죄 재판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지난 15일 김상준 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 대표변호사는 ’특정 판사의 잘잘못이 아닌 교육과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성범죄 재판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법조인 양성 과정에 성차별 의식을 자각하고 교정할 기회가 없는 게 문제다.”

‘성범죄 판단’ 분석 김상준 변호사 #피해자들 가장 큰 고충은 자책감 #심리적 특수성 모른 채 반복 신문 #중형·무죄 선고 유독 많은 판사도 #차별의식 깨닫게 교육 등 나서야

중앙SUNDAY와 함께 로스쿨 학생 대상 ‘양가적 성차별주의’ 조사 결과를 분석한 김상준 법무법인 케이에스앤피 대표변호사는 지난 15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6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김 변호사는 법심리학 박사로 법무법인 산하에 법과인간행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판단자의 차별의식은 개인차가 크고 상황논리에 휩쓸려 드러나기 쉬워 사법 판단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중요한 변수”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독 성범죄 재판에서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태도가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수사 부실이나 사건의 특수성으로 인해 피해자의 진술 이외의 증거가 전무한 상태로 기소되는 경우가 많다. 증거는 피해자 진술뿐인데 외형적 폭력이 행사된 흔적도 없고 두 사람이 연인관계 등 친분 있는 사이일 때에는 진술의 참·거짓을 가리기 위해 피해자의 전후 행동을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피해자의 심리적 특수성을 간과하고 필요 이상의 반복 신문을 하는 등의 2차 피해는 주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다.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가 재판을 받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의 심리적 특수성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는 다중적 스트레스를 보고하는 연구가 많다. 가장 큰 게 자책감이다. 피해자 스스로 ‘내가 이런 행동을 안 했다면 안 당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에서의 공방, 사실관계 공개로 인한 2차·3차 피해를 당하다 보면 세상 전체에 맞서 싸우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피해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는 게 어렵다. 피해자가 극도의 공포나 흥분 또는 피로 상태일 때 범죄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정확한 복기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반대로 부인만 하는 피고인은 진술이 일관돼 보이기 쉽다.”
판단자의 성차별적 의식이 성범죄 인식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독 중형을 선고하는 판사나 두드러지게 무죄 선고가 많은 판사가 발견되는 게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실무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고정관념이 굳어져 변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기 쉽다는 점이다. 법관 연수 등에서 성인지 감수성 등의 주제가 다뤄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우리 법조인 훈련 과정에는 자신의 차별의식을 자각하고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이 생략돼 있다.”
판단자의 편향된 성 인식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는 없나.
“심리학적 진술 분석이 피해자 진술 신빙성 판단의 보조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아직은 아동·청소년 또는 지적 장애인이 피해를 당한 경우에 한정된다. 성인이 피해자인 경우로 활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법관은 진술 분석 결과를 참고해 판단을 내리는데, 진술 분석 결과와 법관의 판단은 80% 이상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심리학 전공자인 진술 분석관이 일정한 편향을 보이는 경우엔 분석 결과가 배척되기도 한다.”
대법원이 최근 성인지 감수성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재판 경향은 객관적 제3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상황을 참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 판결은 이 같은 경향을 보다 강조해 성인지 감수성을 증거 평가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이 같은 흐름이 차별의식을 자각하고 교정할 수 있는 기회와 맞물려야 재판 관행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탐사보도팀=임장혁·박민제·이유정 기자
김나윤 인턴(성신여대 화학4)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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