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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효수 사진」 주인공은 서양 선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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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정읍=강영진 기자】1894년 갑오년 동학군이 관군을 상대로 첫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전북 정읍군 황토현 일대에 마련된 「갑오 동학 유적지」의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전시물 등이 사실과 다르거나 관계가 별로 없는 것이 상당수여서 교육장으로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이 기념관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84년에 준공, 87년12월9일 개관한 것인데 여기에 전시된 73점 중 전봉준 등이 모여 결의, 각지에 봉기할 것을 알리는 사발 통문 등 관계 자료 5∼6점을 제외하고는 갑오 동학 농민 전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잘못된 것은 1895년3월29일 처형된 전봉준의 사진. 41세로 교수형 된 전봉준이란 설명이 붙어 있는 이 사진은 효수 (조선시대 목을 베어 높이 걸어놓는 처벌)된 머리 모습인데 이 사진은 1890년께 처형된 서양 선교사의 모습으로 밝혀졌다.
이 사진이 처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정성길씨 (한국 민속 홍보 센터 대표·대구 거주)가 가톨릭 출판사에서 선교 2백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었던 『백년 전의 한국』이라는 사진 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5∼6년 전 개화기 미국 선교사였던 「아펜젤러」의 후손으로부터 입수했다는 것.
이 사진의 얼굴은 피부색이 희고 매부리코에 텁수룩한 수염이 나 동양인으로는 보기 어렵다.
또 1895년 당시엔 사진처럼 효수라는 처형 제도가 없었고 전봉준도 교수형으로 처형된 것이 각종 기록에 나온다 (궁 내부 일기 고종 32년 을미 3월29일자 법무 대신이 왕에게 상주).
이 사진에 대해 조광 교수 (고려대)는 1890년께 중국에서 처형된 외국 선교사 모습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념관 유물의 수집과 고증을 맡고 있는 김용만 전북도 문화재 위원은 『이 사진은 독립기념관·총무처 자료실 등에도 전봉준의 사진으로 소장, 전시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진 외에도 기념관 입구 칸막이에 크게 걸린 「남천감로」란 글씨 탁본과 고택에 붙어 있는 설명 중 전봉준이 양반 출신이란 것도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또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에 「전봉준 선생이 쓰던…」 「동학군이 사용하던…」 식의 단정적 설명에 맞는 전시물들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상보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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