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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엇갈리는 여자 육상의 두 히로인|김희선은 "펄펄" 임춘애는 "주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한국 여자 육상 필드와 트랙의 대표적 히로인인 김희선 (26·코오롱)과 임춘애 (20·이화여대)의 행로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높이뛰기의 김희선은 이미 주부가 되고도 태릉살이를 고집하며 먼 앞날을 향해 바를 뛰어넘는 고된 훈련을 계속하고 있는 반면 중장거리의 임춘애는 잇따른 병마와의 씨름에 지쳐 조락의 길로 접어들어 명암이 너무도 대조적인 것.
김희선은 대표 선수 경력 9년째의 노장. 지난 80년 서울 체고 1년 때 첫 태극 마크를 단 이래 줄곧 자신의 한국 기록을 경신해오며 외로운 독주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그 동안 경신한 한국 기록만도 모두 6차례. 86서울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 (1m89㎝·시기차)에 머물렀으나 88서울올림픽에서는 1m92㎝를 뛰어넘어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 (8위 입상)를 이룩, 아시아 여자 육상계에 신기원을 여는 위업을 남겼다.
지난해 10월 역시 높이뛰기 선수 출신 (성균관대)인 도호영씨 (회사원)와 결혼했지만 그녀의 집념은 남달랐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건 후에라야 선 수생활을 마감하겠다는 것-. 남편을 졸랐고 시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 같은 노력이 주효해 주부 선수 김희선은 마침내 태릉선수촌에 입촌, 후배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가시밭길의 기록 경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 선수로서 결혼을 하고도 이와 같은 훈련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육상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1m68㎝·52㎏. 체구에 비해 도움닫기 리듬과 폼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고 그 동안의 체력 훈련으로 평소 뒷심이 달린다는 흠을 집중 보완했다.
오는 3일 헝가리에서 벌어지는 89국제 실내 육상 대회는 주부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테스트 무대. 아무튼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선 김희선의 투혼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반면 아시안게임 3관왕의 주인공 임춘애의 조락은 매우 대조적이다.
가냘픈 몸매 (1m68㎝·47㎏)로 하루아침에 아시아 육상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던 임이지만 이후 곤두박질, 후배 최세범 (서울 체고)에게 왕좌를 내줘야 했고 급기야 서울 올림픽에서는 자신의 주종목인 3천m에서조차 예선 탈락하는 쓰라림을 맛봐야 했다. 당시 임의 기록은 9분21초18로 자신의 최고 기록 (9분11초92)에 무려 10초나 뒤지는 것이었다.
임의 이 같은 부진은 지병인 고관절 (골반 및 관절) 피로 골절 증세가 완쾌되지 않고 있는게 주된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칫 무리할 경우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되는 이 증세는 임에게 견딜 수 없는 좌절감만을 가져다주고 있다는게 어머니 조말자씨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임은 지난해 11월 전국 대학 선수권 출전을 포기했고 지난 1월18일 새로 구성된 대표 선수단에서도 제외되는 불운을 겪었다.
지난해 이화여대에 진학, 학교 앞에 전세방을 얻어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임은 최근 팀훈련에도 자주 빠질 만큼 극도의 피로감에 빠져 있고 정신력 또한 크게 약화된 상태.
성남 집은 매주 한차례 들를 정도. 가족들은 임이 이젠 『운동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즈음 학원을 찾는 등 운동보다는 뒤늦은 학업에 더 열중하는 모습이다.
임이 겨우 스무살의 나이에 한계를 보이는데 대해 육상계 일부에선 부상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어 주목되고 있다. 임은 중학 시절부터 김 모 코치에 의해 발굴·육성되었고 결국 여고생 (성남 성보 여상)으로 아시아 정상에까지 올랐는데 지도 스타일이 혹독한 강훈 일변도인 김 코치의 그늘로부터 거의 성년이 되고도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운동에 환멸을 갖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결국 절대적 존재인 김 코치가 임에게 정신적 족쇄가 된 셈이다. 김 코치는 아시안게임 후인 87년4월 휴식을 원하는 임이 게으름을 피운다고 매질, 고막이 상하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육상 경기 연맹 측도 국제적 선수가 된 후의 임에게 적절한 지도를 펴지 못한 실책을 후회하고 있다.
임은 현재 매달 30만원의 체육 연금을 받고 있으며 이와 함께 받은 육상 포상금 1억5천8백25만원 중 5천만원만 찾아 쓰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육상 연맹에 위탁 관리중이다.
평소 교사의 꿈을 키워왔다는 임은 과연 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 것인가.
그녀의 가능성을 익히 믿고 있는 육상인들은 크게 안타까워하고 있다. <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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