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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 정책' 탄핵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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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5.31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의 충격적인 패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심은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그것은 여권의 '편 가르기'식 국정운영과 정국관리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내 편이 아니면 네 편' '적이 아니면 동지'로 국민을 나누는 이분법적 국가관리와 정국운영에 대한 탄핵이라는 것이다.

① 잘나가는 20% 대 살기 힘든 80%=정부는 후반기 국정운영의 키워드를 양극화 해소로 잡았다. 목표는 옳지만 상황 인식과 정책수단은 논란을 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근로소득세의 90%를 상위 소득자 20%가 내고 있으니 세금을 더 올리더라도 나머지는 손해 볼 것이 없다(3월 23일 인터넷 대화)"고 강조했다. '20 대 80'논쟁의 시작이었다. 이 같은 세금정책은 "돈 많은 20%한테 세금을 더 거둬 서민에게 나눠주겠다"는 포퓰리즘 이미지를 낳았다. 부유층과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불안심리를 안겼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나머지 80%에 기댔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정당 득표율은 21.6%(한나라당 53.8%)에 불과, 사상 최악의 참패를 했다. 서민.자영업자들도 나서 편 가르기 경제정책을 질타한 것이다.

경북대 김형태 교수는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고 가진 자가 돈을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점을 서민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② 강남 대 강북=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은 '부동산 버블 세븐' '강남붕괴론'을 거론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강남 사람들한테 유감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남 사람이 돈 버는 것이 배가 아파서도 아니다(5월 19일 중소기업인 간담회)"고 말했다. 여당은 강북 주민, 무주택 유권자들의 지지를 기대했다. 선거 결과는 딴판이었다. 서울의 25개 구청장 모두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다. 강남 아파트를 겨냥한 부동산 정책이 강북 주민들에게도 세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집 없는 서민들은 정부의 장담과는 달리 아파트가격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에 절망했다.

③ 젊은 세대 대 기성세대=열린우리당은 정권 탄생의 동력을 젊은 세대로 파악했다. 노사모의 결집력과 네티즌 파워를 잊지 못했다. 2004년 총선에서 정동영 의장의 발언("노인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젊은 층도 현 정권에 등을 돌렸다. 글로벌리서치 조사 결과 광역단체장의 경우 20대 유권자의 47.3%가 한나라당을 지지했고, 34.7%가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다. 30대도 한나라당 50.1%, 열린우리당 24%의 지지율을 보였다. 젊은 층=열린우리, 중장년층=한나라당 지지라는 등식이 무너졌다.

④ 보수 대 진보=이념논쟁은 현 정권 들어 더욱 거셌다. 여당은 자신들을 '개혁 진보'라고 자처했고 반대세력을 '수구 보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어설픈 이념 과잉, 낡은 이념정치라는 논란도 거세게 일었다. 정권이 주도하는 이런 논쟁은 개혁피로, 갈등정치라는 지적을 받았다.

⑤ 기득권 대 비주류=기성조직과 시민단체, 사학재단과 전교조 등 사회 여러 분야에 금을 그었다. 교육 3불정책은 평준화에 맞춰졌지만 교육의 기득권층 허물기로 비춰졌다. 다수 국민은 그런 이분법을 놓고 "과도한 분열"이라며 피곤해한다.

2004년 대통령 탄핵 때 현 정권은 한나라당을 '부패한 강자'로, 자신들은 '깨끗한 약자'로 규정했다. 17대 총선 승리의 결실을 얻어냈다. 그러나 편 가르기식 국정운영, 여론관리는 부메랑이 돼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줬다. 이번 선거에서 거대한 민심이반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정치학 교수와 선거 전문가들은 "국민이 대통합의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났다"고 말했다. 통합은 노 대통령의 철학이기도 하다. 국민은 대통령의 실천을 기다리고 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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