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냉면 겨자처럼 톡 쏘는 독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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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상식을 뒤집는 Wit&Wisdom
설태수 엮음
북인

"남자는 늙어가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이 말에 "맞아, 맞아"하며 손뼉을 치는 여성들이 많을 겁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여자는 사랑받을 대상이지, 이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면, 전형적인 마초근성이라 입을 삐죽거리지 않을까요.

이 모두 19세기에 활약한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입니다. 그는 우리에게는 동화작가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겨울이 닥쳐와도 남쪽으로 가지 못한 제비와 왕자의 동상이 주인공인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 '행복한 왕자'가 바로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했던 그는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희곡 '살로메'로 어엿하게 영문학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게다가 동성애로 투옥되기까지 한 드라마틱한 삶과 날카로운 풍자로도 유명하지요.

부제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머 노트'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그의 작품에서 발췌해 인용한 독설.경구(警句) 등을 모은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유머러스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무심코 보아넘기는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해 날카롭게 벼리고 쪼아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대목이 수두룩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냉면에 뺄 수 없는 겨자 같다고나 할까요. 영양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톡 쏘는 것이 입맛을 돋우는 것 말입니다.

"여자들은 그들 생애 중 한때의 황금 같은 것을 남자에게 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항상 거스름돈처럼 평생 동안 돌려받기를 원한다." 어쩐지 남성우월주의자 냄새가 풍기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남자를 창조할 때 자신의 능력을 다소 과대평가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란 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내키는 대로, 가리지 않고 화살을 쏘았다는 느낌입니다.

"남자들은 항상 여자의 첫사랑이 되기를 원한다…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한 남자의 마지막 로맨스가 되는 것이다"란 그 유명한 지적도 저작권 소유자가 오스카 와일드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세상에는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 그것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역시 다양한 변주가 있는 명언입니다.

가벼운 풍자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의견충돌을 일으킨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들과 그렇게 한다"같은 지적은 제법 심오해 수시로 읽고 곱씹어 볼 만합니다.

그런데 선거일인 오늘, "애국주의는 사악한 자들의 도덕이다"란 구절을 만나면 선택에 도움이 될까요? 이런 류의 잠언집이 지니는 한계에 더해 이 책은 출전이나 원문을 밝히지 않은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때때로 뒤적이면 얻는 게 있지 싶습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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