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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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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발명왕 에디슨. 그는 현대인에게서 잠을 훔쳐간 주범이다. 하루 네 시간만 잤다는 그는 '잠꾸러기'를 증오했다. "하루 여덟 시간 넘게 자는 사람은 24시간 내내 잠을 자는 셈이다." 그는 잠꾸러기들에게 저주를 내린다. 바로 텅스텐 전구의 발명이다. 1913년 그의 전구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하루 평균 아홉 시간 반을 잤다. 그러나 현대인은 평균 여덟 시간 잔다. 하루 한 시간 반, 한 해 547시간의 잠을 에디슨의 전구가 빼앗아 간 것이다.

잠 도둑은 에디슨뿐이 아니다. '불면=성실+의지'로 대접하는 '불면(不眠) 신드롬'도 공범이다. 밤을 샌다며 질끈 동여맸던 머리띠의 단골 표어, 4당5락(四當五落.네 시간 자면 합격, 다섯 시간 자면 낙방). 이는 해방 이후 수험생의 잠을 빼앗아 온 주범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나폴레옹에서 처칠까지, 곳곳에 널린 불면의 영웅신화도 대표적인 잠 도둑들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안 자고 버틸 수 있을까.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던 랜디 가드너가 이 질문에 도전했다. 목표는 264시간(11일). 샌디에이고 미 해군 신경정신과 연구팀의 존 로스 대위가 전 과정을 기록했다.

2일째:랜디는 간혹 눈의 초점 맞추는 것을 힘들어한다. TV 보는 것을 포기했다. …

4일째:우울증이 심해졌다. 화를 잘 내고 비협조적이다. 오전 3시, 환상이 나타났다. 자신이 유명한 흑인 축구 선수라고 착각한다. …

11일째: 무표정한 얼굴. 발음은 우물우물. 숫자를 제대로 못 세고, 방금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64년 1월 초의 이 실험은 '잠 안 자기 연구'의 전설이 됐다. 랜디는 가장 오래 '불면'한 인간으로 기록됐다.

불면이 지나치면 죽음을 부른다. 프랑스의 드 마나센 박사의 실험 결과, 잠을 빼앗긴 어른 개는 13일이면 죽었다. 강아지는 훨씬 빨라 6일째부터 숨졌다.

불면은 미국에서만 매년 560억 달러 넘게 손실을 끼친다. 항공기.열차.버스 등 각종 사고의 주범이 불면이다. 해마다 2만5000명이 목숨을 잃고, 250만 명이 장애에 빠진다. 심리학자 스탠리 코렌은 이를 '불면 신드롬이 빚은 참사'라고 불렀다.

한 시장 후보가 72시간 불면 유세를 펼쳤다. 또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 내고 싶었던 것일까. 오죽하면 사흘 밤을 밝혔으랴만, 오늘 밤은 푹 잠들기 바란다. "불면에 대한 최고의 치료는 잠을 더 자는 것이다." 전설적인 코미디언 W C 필즈의 말이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