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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것들이 나를 말해준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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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32면

저자: 김동훈 출판사: 민음사 가격: 1만 8000원

저자: 김동훈 출판사: 민음사 가격: 1만 8000원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물을 순 있지만, 욕망이 어떻게 변하느냐고는 따질 수 없다. 욕망의 속성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브랜드 인문학』

브랜드에 대한 열망도 마찬가지다. 올겨울, 이 브랜드의 코트 하나만 있으면 평생토록 입겠다는 결심의 유효기간은 기껏해야 일 년, 아니 한 달 사이에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우리의 욕망은 왜 그토록 달라지는 것일까, 어떻게 변하는 것일까. 책은 그 답을 철학적·문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한다.

여기에 얼개가 되는 것이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 질 들뢰즈(1925~95)와 펠릭스 가타리(1930~92)의 공동 저서인 『천 개의 고원』이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이 명저를 언급하는데, 특히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욕망을 ‘접속-배치-영토화-탈주-탈영토화’라는 도식으로 설명해내는 대목이 흥미롭다.

다시 코트를 예로 들어보자. 주변 누군가가 럭셔리 브랜드의 코트를 걸치고 나왔다 치자. 브랜드와 그와의 ‘접속’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사치로만 봐야 할까. 어쩌면 그는 그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홍보의 수단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남자친구와의 인연을 기념하는 증표였을 수도, 일한 수당 대신 받은 현물일 수도 있다. 이처럼 브랜드의 ‘배치’는 각자의 맥락에서 벌어지고, 존재 이유를 정하는 ‘영토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이내 그는 또다시 새롭고 이질적인 것을 찾아 ‘탈주’하고 ‘탈영토화’로 도발할 것이다. 다른 삶, 다른 존재 방식을 보여주는 브랜드를 욕망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책은 정체성 외에도 우리가 특정 브랜드에 ‘꽂히는’ 요인을 감각과 욕망·주체성·시간성·매체성·일상성 등으로 나누고, 이에 맞는 브랜드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이를테면, 발렌시아가는 바로크 시대 왕가의 신비감을 내세우는 디자인으로 시민을 자극했고, 베네통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색채에 굶주렸던 대중들의 생동감을 일깨우면서 브랜드를 발전시켰다.

수많은 브랜드를 소개하는 책이 말하려는 건 명료하다. 이 서로 다른 브랜드들의 색깔들이 결국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메시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잠들어 있던 무의식의 잠재력을 일깨워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알려준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지금 어떤 브랜드가 마음에 든다면, 꼭 갖고 싶다면 먼저 자문해보라. 브랜드의 어떤 지점이 나의 취향을 만족하게 하는가, 라고 말이다. “결국 브랜드 취향은 나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창의력을 깨우는 데 하나의 키워드가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기도 하다.

익숙한 브랜드들을 낯설게 바라본 책은 그럼에도 사소한 아쉬움을 남긴다. 대상 브랜드 대부분이 패션업이라는 점, 신간임에도 브랜드에 대한 업데이트가 끝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버버리 새 디자이너 임명, 입생로랑의 개명 등)에서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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