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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새만금·신공항 … 예산시즌 ‘지역 홀대론’ 극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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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충북 KTX 오송역 에서 2016년 12월 열린 대정부규탄 대회에서 충북 범도민 비상대책위원회와 주민들이 KTX 세종역 신설 방침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 KTX 오송역 에서 2016년 12월 열린 대정부규탄 대회에서 충북 범도민 비상대책위원회와 주민들이 KTX 세종역 신설 방침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113년 동안 호남은 경부 축의 들러리였다.”(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

호남선 “새만금 태양광 도움 안돼” #TK “470조 예산에도 우리만 줄어” #충청은 세종의사당·KTX역 주장 #영남지역 신공항 부지 논란 여전

10월 31일 국회 귀빈식당. 호남선 KTX의 직선화를 촉구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무소속 등 호남지역 국회의원 17명이 모인 자리에선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된 때부터 호남은 곁다리였다”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같은 시각 대구·경북(TK) 의원 20여 명도 의원회관에 모였다. 이철우 경북지사, 권영진 대구시장도 왔다. 예산안 심사를 앞 두고 “470조원에 이르는 내년도 예산에 대구·경북은 늘기는커녕 줄었다”(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 등)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의도 정가가 ‘지역 홀대론’으로 들끓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예산 시즌이 시작되는 11월이면 지역 홀대론이 단골 레퍼토리였는데, 올해는 지역 경기가 더 나빠진 탓인지 ‘우리만 차별당하고 있다’란 볼멘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지역 홀대론이 거세지는 데엔 우선 ‘슈퍼 예산안’이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9.7% 증가한 약 470조5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곳간이 넘치자 손 벌리는 곳도 자연히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새만금 태양광 개발 계획이 기름을 끼얹었다는 지적이다. 박주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안 그래도 전북은 피해의식이 있는데 새만금에 ‘태양광 패널깔기’라니,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강타하는 지역 이슈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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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국회 테이블에 오르내리는 지역 이슈는 수두룩하다. 충청권에선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 KTX 세종역 신설 등이 화두다. 특히 세종시가 지역구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직접 나서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해야 한다”고 하자 논란은 확산일로다. 세종시 국회 분원은 2016년 총선에서 이 대표의 공약이었다.

서울이 지역구인 한 여당 중진은 “국회 분원을 설치하면 비효율성만 높일텐데, 왜 집권여당 대표가 지역 이슈를 노골적으로 건드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KTX 세종역 신설은 충청권 민심을 둘로 쪼개고 있다. 현재 KTX는 충북 오송역을 지나고 있다. 위기의식을 느낀 충북 출신 의원 9명이 지난달 29일 긴급 회동을 가졌다. 민주당 변재일·오제세·이후삼, 한국당 정우택·박덕흠·경대수·이종배, 바른미래당 김수민, 정의당 김종대 등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이들은 “기껏 3조원을 들여 오송역을 만들고선 그것을 내팽개쳐 버릴 것인가”라며 “문재인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스스로 무너뜨리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남에선 신공항 논란이 지뢰처럼 잠복해 있다. 포화상태인 김해 공항의 대체지로 대구·경북(TK)은 밀양을, 부산·경남(PK)은 부산 가덕도를 내세우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결국 박근혜 정부에선 어느 쪽 손도 들지 못한 채 김해공항을 확대하는 것으로 봉합했지만, 신공항에 향한 지역적 요구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특히 대구 민심이 흉흉하다. 대구 물산업 클러스터 사업의 핵심인 시험센터 예산은 아예 빠진데다, 대구와 구미·경산을 전철로 연결하는 대구광역철도 구축 사업은 요청한 225억원 중 고작 10억원만 반영돼서다. “정권 뺏긴 것을 이제야 진짜 실감하고 있다”란 말이 만연할 정도다.

이해찬 대표가 9월초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공식화한 것도 뇌관이다. 지역마다 물밑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부산 정치권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을 유치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에 민첩하게 나서자, 전북 현역 의원들은 “금융산업에서 낙후된 우리쪽으로 와야 한다”며 여론전을 펴고 있다.

과거엔 보수 정당이 ‘영남 홀대’를, 진보 정당이 ‘호남 홀대’를 주장하는 단순 구도였다. 최근엔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정치 지형이 바뀐데다, 지역 맹주 개념이 사라지면서 개별 단위별로 각개 약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역주의는 약화되고 있지만 ‘우리만 손해본다’는 지역 홀대론은 형평성과 맞물려 여전히 폭발력이 있다”며 “그러나 원인과 근거 등이 거세된 채 지역 감정만 부추기는 ‘홀대론’은 지역주의 망령의 또다른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가 호남 홀대? 요직 진출, DJ정부 이어 2위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호남에 섭섭한 말을 하면서부터 (홀대론이) 시작됐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일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리더십 연구센터는 지난해 역대 정부(1948~2016년)의 차관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 3213명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역별 차관급 이상 비율이 그 지역 인구 비율에 비해 높으면 우대지역(+), 낮으면 홀대지역(-)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르면 호남은 이승만 정부(-12.42%)와 박근혜 정부(-10.84%)에서 차관급 이상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낮았다.

반대로 김대중 정부(+4.58%) 때는 호남의 요직 진출 비율이 가장 높은 ‘우대’ 시기였다. 그 다음이 노무현(+2.74%) 정부였다. 고건·한덕수 국무총리, 김종빈 검찰총장, 김승규 국정원장, 전윤철 감사원장, 이용섭 국세청장 등이 호남 출신이었다. 당시 호남 출신 청와대 인사는 13명, 장관급은 21명이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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