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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주장정국 시각차만 확인-주말「노-김 회담」서 오간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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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국현안을 논의하기위해 올들어 처음 열린 여야 고위회담인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양자 단독회담은 예상대로 각자의 주장만 밝힌 채 팽팽한 평행선을 그었다.
회담 전부터 김 총재 측은 『노 대통령에게 시국에 대한 진실된 얘기를 해주겠다』는 생각이고 노 대통령 역시 『김 총재의 시국전반에 대한 의견을 듣겠다』는 생각이어서 처음부터「합의」보다는「주장의 천명」으로 끝날 것이 예상되긴 했었다.
이날 회담은 배석자가 한사람도 참석하지 않고 단 두사람 간의 회담으로 2시간여 진행됐다.
다음은 의제별 대화요지.

<시국에 관한 견해>
◇노태우 대통령=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여야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차이가 없다.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는 정부·여당은 억압하고 야당은 저항했지만 이제 그런 상황은 끝났다.
새 공화국은 여야합의에 의한 민주체제이고 현재 모든 방향이 민주화로 가고있지 않느냐. 대의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여야가 공동노력하고 공동대응해야 한다. 옛날 같은 생존경쟁·극한대결이 아닌 대화·타협으로 당면과제를 해결해가자. 민주화를 저해하는 일부 폭력불법세력에 여야가 함께 대처해야 하며 야당도 체제전복세력에 대해서는 확실한 태도표명이 있어야 한다.
경제·민생치안 문제도 여야간에 입장차이가 있을 수 없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원화절상·흑자경제로 인한 부담 또한 크다. 정국불안은 경제안정과 민생문제해결의 바탕 위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내외의 도전을 여야가 정치적 안정의 틀 위에서 대처해 나가자.
▲김영삼 총재=일본방문 중 검찰의 5공 수사종결 발표를 보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작년 8월 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 때부터 철저한 과거의 청산 없이는 밝은 미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해 왔음에도 그동안 수사내용을 보면 진상규명보다는 호도와 은폐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야당 총재들이 고심 끝에 5공 핵심인물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요구했는데도 이에 대한 조치는 단 한 사람의 구속에 그쳤다. 이와 때를 같이해 여당대표는 중간평가를 국회해산과 결부시킬 의향을 비추면서 국민과 야당을 협박하는가 하면 중간평가 그 자체를 하지않을 뜻을 비추기도 했다.
정부는 또한 특위정국을 회석시키고 국내정치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목적으로 무분별한 남북접촉과 북방외교를 급속히 추진, 나라의 방향을 어지럽게 했다. 특히 정부의 주무부처를 따돌리고 야당과도 일언반구 사전협의가 없는 가운데 경제인과 청와대보좌관을 앞세워 비밀잠행외교를 한 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노 대통령의 시국에 관한 인식은 매우 안이한 것 같다.
두 전직 대통령이 국민과 역사 앞에 떳떳하게 과거의 잘못에 대한 뉘우침의 빛을 보이고 특별검사제의 도입으로 미진한 5공비리의 구조적 모순을 밝혀낸다면 노 대통령은 중간평가에서 국민의 공정한 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앞으로의 정국은 예측 못할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5공 청산>
▲노 대통령=국민역량을 모으고 초당적으로 국가적문제를 해결하자면 국내정치의 불안이 있어서는 안된다. 과거의 문제가 정리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국회특위·검찰조사로 지난날의 문제는 상당히 드러났다고 본다. 그 정도로 지난날의 문제는 처리하고 특위정국을 조속히 마무리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여든, 야든 국가적 차원에서 당면문제와 앞날의 슬기를 모아야 한다. 특검제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 야당 주장대로 5공비리를 확대, 지속하면 정치적 보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김 총재=오늘날 정국이 표류하고 있는 근본이유는 5공청산에 대한 노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부족, 5공청산 없이는 6공화국의 정통성이 없다는 기본인식의 결여와 5공청산의 방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족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첫째로 「드골」대통령이 자기의 선임 장교였던 「페탱」과 단절했던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5공과의 결연한 단절의지를 국민 앞에 밝힐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검찰의 5공 수사에 실망하고 분개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의지를 보이는 길은 특검제 도입을 수용하는데 있다고 믿는다.
둘째로 노 대통령에 의해 출발한 6공화국의 정통성은 5공과의 단절에서만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정통성 있는 6공화국의 안정을 다지는 길은 5공을 최단시일 내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청산한 후 이를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대로 국민투표에 의해 신임을 묻는 방법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셋째로 5공 청산의 방법은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협박성 발언이나 기교적 제안이 아니라 정도정치에 따른 공명정대한 방법이 되어야 한다.

<정치자금 조사>
▲노 대통령=지난해 11월 26일 내가 분명히 밝혔듯이 정치자금은 전직대통령 혼자의 문제도 아니고 지난 7년간의 복잡한 내용을 다 파헤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것 아니냐. 그 문제를 파헤친다는 것은 정치안정을 위협할 수 있어 야당주장대로 다루기는 어렵다.
▲김 총재=검찰의 5공비리 수사는 변죽만 울렸을 뿐 권력개입부분과 정치자금 조사 등 본질적 문제와 이와 관련된 핵심적인 인물에 대하여는 수사하지 않았다.

<중간평가>
▲노 대통령=우선 김 총재의 의견을 광범위한 여론수렴의 일환으로 듣고싶다. 중간평가는 내가 국민에게 한 약속인 만큼 나 스스로의 결심에 의해 반드시 실천하겠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국가적인 과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나라발전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방법과 시기를 선택하겠다.
▲김 총재=중간평가 문제만 하더라도 노 대통령과의 대 국민공약과는 달리 엉뚱하게 『4당체제의 신임』운운으로 정국혼란의 도구로 전락시키는가 하면 5공 청산과 관련 없는 엉뚱한 것을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든지 심지어 이를 지연, 회피할 움직임마저 보임으로써 정국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6공화국의 정통성을 더욱 의심케 했다.

<전·최 씨 증언>
▲노 대통령=전직 대통령은 은둔의 길을 떠나고 친-인척·형제 등을 비롯, 47명이 구속됐는데 이는 민주국가에서는 예외적인 일이다. 전직 대통령의 증언을 듣자는 목적이 사실규명에 있다면 꼭 청문회나 공개증언이 아닌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닌가.
▲김 총재=최·전 전 대통령의 국회증언에 있어서도 이들의 국회증언을 『정치보복』이니, 『전직 대통령의 예우』라는 교언을 쓰면서 광주사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의 소리를 무시하는 사태는 참으로 위험하고 유감된 일인 것이다.

<북방외교·남북문제>
▲노 대통령=올림픽성공과 여야 및 국민적 노력으로 북방외교가 획기적으로 진전을 보이고있고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 일의 성격상 초기단계에서 비공개적인 방법의 추진이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정부 각 부처간의 협조와 종합대책, 면밀한 대응은 물론 초당적 협조를 얻어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야당과도 수시로 협력하고 정부와 민간차원의 협조도 더욱 체계화해 적극 추진하겠다. 이제 민족자존의 입장에서 자주적 외교시대가 열리고 있다. 통일문제는 민족적과업으로 어느 정파에도 이용될 수 없다.
▲김 총재=북방외교가 청와대보좌관에 의한 밀실·비밀외교로 이루어지고 남북관계에 있어서 무분별한 접촉으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밀실외교와 무분별한 남북접촉을 가지고 국내정치의 정략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되고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정주영 회장 방북의 경우에 있어서도 국가이익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노사·민생치안>
▲노 대통령=불법집단 폭력행동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단호히 행사하겠다. 야당도 협조해달라. 특히 경찰중심으로 공권력이 강화되는 데는 야당의 협력이 절실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폭력혁명으로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야당도 확고한 태도표명이 있어야 한다. 특히 공공연하게 폭력혁명을 선동하고 반미폭력을 유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야당이 인식을 같이해줄 것을 바란다. 민생치안을 위해서 경찰인력·수사장비를 보강하는 데도 협조해달라.
▲김 총재=물가문제를 비롯, 부동산투기 등 경제환경의 악화도 따지고 보면 정국불안에서 오는 행정공백상태와 공직자기강 해이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지자제>
▲노 대통령=여야간에 원만한 타협이 이루어져 연내에 실시되기를 바란다. 다만 기초단위든, 광역단위든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우선 의회부터 구성하고 단체장은 그 이후에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꺼번에 실시하는 것은 지역감정·재정문제·행정공백초래 등에 있어 부작용이 커진다. 국회에서 의견을 잘 모아달라.
▲김 총재=지방자치법의 개정, 각종 악법폐지와 개정 등 민주화의 기반을 다지는 각종 숙제들의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한에서는 정국안정을 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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