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의 한·일 관계, 미래 향해 지혜 모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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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의 후폭풍이 만만찮다. 이번 재판은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77년 한(恨)을 씻어준 판결이지만 동시에 지금의 한·일 관계를 있게 한 ‘1965년(수교) 체제’를 뒤흔드는 성격이 짙다. 여기에다 지난주 조현 외교부 1차관이 한·일이 합의해 조성한 ‘위안부 재단’ 해산까지 일본 측에 통보했다고 한다. 향후 파장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본의 고노 외무상은 어제 “65년 국교 회복 이래 양국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손상하는 것이라 일본은 무겁게 보고 있다”고 항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다. 고노 외무상은 “한국 정부가 중대성을 감안해 의연하게 대응해 달라”고 요구했고, 강 장관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주목되는 건 일본 여론이 진보·보수 구분 없이 한국에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국 정부를 비판했던 아사히신문마저 “관계의 전제가 무너졌다”며 “한국은 대통령이 사법기관 포함 모든 것을 쥐는 제왕적 권한을 가지고 있고, 정치도 여론에 영합하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일본 언론이 ‘한국이 국가 간 합의·약속보다 여론을 더 신경 쓰고, 정권에 따라 법 기준도 달라진다’고 비판했다.

돌이켜 보면 1965년 두 나라가 맺은 ‘기본관계조약’과 청구권 합의 등 4개 협정은 한국의 미래, 그리고 한·일 관계의 미래를 보고 한 합의였다. 특히 올해는 양국 관계를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파트너십’으로 한 차원 높인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이다. 북한 핵 문제와 미·중 무역전쟁 등 대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때에 한·일 간에 다시 격랑이 일고 있다. 동북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 가치를 함께하는 한·일 두 나라가 또 한 번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