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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좋구나, 국악 대중 속으로 휘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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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얼씨구나, 옷 입은 꼬락서니 좀 보소. 저고리는 뉘 집에다 벗어놓고 치마는 가운데를 뚝 허니 잘라놨는가. 내 자석이면 다리몽둥이를 똑 하니 분질러 버렸을 것인디. 헌디 소리 하나는 희한허게 자알 하는구나…."

한복에서 모티브를 딴, 그러나 패션쇼에서나 봄직한 파격적인 의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중가요와 국악을 접목시킨 5인조 신국악단 'SOREA(소리아)'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오나라 오나라~'를 불러 이름을 알린 이안은 어떤가. 대중 가수로 데뷔해 '오리엔탈 발라드'란 장르를 개척하고 2집까지 냈다. 최근 쏟아져 나온 응원가 중 각종 온라인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는 등 대중의 지지를 받은 싸이의 'We Are The One' 역시 드럼과 꽹과리, 기타와 가야금의 합주에 태평소가 울리는 퓨전 국악이다. 국립국악원은 홈페이지(www.nckpa.go.kr)에서 웰빙음악 등 '생활 국악'을 휴대전화 벨소리로 무료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악이 대중 속으로 휘몰아치듯 들어온다.

글=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혼성 5인조 국악 밴드 소리아

흥겨운 판소리 가락이 휘모리 장단에 맞춰 흘러나온다. 장구.해금.대금.가야금.꽹과리 등 국악기 소리와 함께 드럼.베이스 등의 서양 악기 소리에 DJ의 스크래치.랩도 얹혔다. 판소리의 요소인 아니리.추임새 등도 맛깔나게 담았다. 전통 국악에 가까운 가사 '어이~여 떠나가세 팔도강산을 구경가세'로 시작되는 노래는 '룰루랄라 얼씨구 좋다'로 마무리된다. 구수한 '랩 타령'이랄까. 그저 서양 음악에 전통 악기 한둘 정도를 섞어 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반대로 전통 국악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기존 '퓨전 국악'의 선도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해 결성된 5인조 신국악단 소리아('소리'와 'KOREA'의 합성어)의 'Beautiful Korea'다. 사진 왼쪽부터 시우(20.타악), 자이(21.보컬.판소리).주하(25.보컬.해금).DK항(22.소금.대금).지유(22.가야금) 등으로 구성됐다. 자이는 중앙대 국악과, 주하는 서울대 국악과 석사과정, DK항과 지유는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석사과정, 시우는 추계예대 국악과에 재학 중인 젊은 국악인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열린 오디션을 통과해 멤버가 됐다. 국립창극단 이영태 명창이 수년 전부터 준비한 퓨전 국악 프로젝트였다. 국악 축전 금상 수상곡인 'Beautiful Korea'를 포함해 5곡이 담긴 싱글 앨범을 최근 내놨다.

이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국악을 대중과 함께 즐기고 싶다는 것이다. 쉽지는 않았다. 서양 음악과 근본적으로 음정.박자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악 장단은 호흡이라면 서양 음악은 맥박이다. 메트로놈에 정확히 맞춰 연주하는 서양 음악과 달리 국악은 연주자끼리 호흡을 맞춰 늘이거나 줄이곤 한다. 가락도 마찬가지다. "그게 우리 음악의 멋이에요. 하지만 서양 음악에 익숙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박과 절대음감에 맞추려 노력했죠."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던 이들이라 저고리도 없는 파격적인 의상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젠 익숙하단다. 이들은 당당히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5월부터 선발하기 시작한 '이달의 신인'에 지원한 것. 전문가 심사를 거쳐 결선에 오른 세 팀 중 이들은 다음(www.daum.net)에서 벌어지고 있는 네티즌 투표에서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교과서에 나오는 국악은 어렵지만 우리 노래는 따라부를 수 있어 좋다고 하더군요. 국악이면서도 대중적인 음악을 많은 이가 기다렸나 봐요."

'오나라 오나라~' 대장금 가수 이안

'오리엔탈 발라드' 개척
한국적 사랑 화두 삼아
고대 응원가 된 노래도

"가수가 꿈인 적은 없었어요. 가수는 천에 하나도 아닌, 만에 하나꼴로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 되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음악여행을 한 뒤 생각이 바뀌었죠."

서울대 국악과 3학년 재학 시절, 이안은 마음 맞는 친구 둘과 세계 각국으로 음악여행을 떠난다. 대학교 3학년쯤이면 누구나 그렇듯 '졸업하면 무얼 하나, 뭘 먹고 사나'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배운 건 국악뿐인데 사람들은 그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취직할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국악이 가능성 있는 음악인지 알아봐야겠다. 그럼 나가서 놀아보자는 거였죠."

가능성을 못 찾으면 다른 길을 찾고, 가능성을 찾으면 30년간 국악계에 몸담기로 친구들과 약속했다. 결과는 후자였다.

그리고 이안이 택한 길은 대중가수다. 대중이 다가오게 하려면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2004년 1집을 냈다. 발라드면서도 동양적 색채가 강한 '물고기자리'는 그럭저럭 성공을 거뒀다. 딱 2년 만에 2집을 냈다.

"1집 때는 어떤 음악이 저에게 맞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이것 저것 다양하게 받아서 백화점 식으로 담았지만 이번엔 감을 잡았어요."

그는 '한국적인 사랑'을 화두로 삼았다. 2집은 사랑의 설렘부터 흔들림, 아픔과 갈등, 변심과 이별, 추억까지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진다. 고시를 현대화해 가사를 쓰고, 대중에겐 생소한 국악기 양금도 소개하는 등 국악의 분위기를 조용하고 세련되게 녹아냈다. 뱃노래를 응원가 풍으로 만든 '아리수'처럼 경쾌한 곡도 있다. '아리랑'과 '쾌지나 칭칭'을 섞어 만든 1집의 '아리오'는 고려대 응원가로 쓰이고 있다.

"기존에 퓨전 국악이 많이 나왔지만 대중의 호응이 크진 않았어요. 제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가수가 되면 그때 본격적인 퓨전 국악 음반을 내고 싶어요."

이안이 국악중학교에 다닐 때 가야금을 들고 지하철을 타면 어른들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무슨 악기냐. 첼로냐?" "아니오. 가야금이에요. 국악중학교 다녀요." "그럼 커서 기생 되냐?" "…."

그런 경험 하나쯤 가슴에 안고 있는 국악 전공자들은 늘 대중의 사랑에 목말라한다고. 그는 전통 민요와 동요를 현대적인 표현법으로 발표하고 싶단다.

"젊은 사람도 민요를 멋스럽게 부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국악의 이미지 변신이 궁극적인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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