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정상 직전, 죽어가는 사람 만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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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뉴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산(해발 8850m)을 오르다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산악인을 발견했다. 자신도 한 발짝 떼기 힘겨운 상태. 조난자를 지나쳐 정상에 오를 것인가, 아니면 등정을 포기하고 생명을 구할 것인가.

'해발 8000m 등산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등산 윤리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주 동안 에베레스트에서 뉴질랜드.호주.영국.미국의 4개국 산악인들이 상반된 경험을 한 게 알려지면서다. 뉴욕 타임스는 28일 "낮은 기온, 산소 부족 등 악조건 속에서 남을 도우려다 자신의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소위 '죽음의 영역(death zone)'에서의 등산 윤리에 관한 논쟁이 한창"이라고 전했다.

15일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 처음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뉴질랜드의 마크 잉글리스(47)가 23일 인터뷰에서 "하산 때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잉글리스는 해발 8500m 부근 바위 아래에서 산소 부족으로 숨져가는 영국인 데이비드 샤프(34)를 발견했으나 구조하지 않고 등산을 계속해 정상을 밟았다.그는 "그 정도 높은 곳에선 남의 목숨은 고사하고 내 목숨을 건사하는 것조차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날 아침 정상을 오르내린 40여 명 모두 샤프의 곁을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샤프는 결국 현장에서 숨졌다.

소식이 전해지자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경은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 순위를 완전히 잊고 있는 것 같아 경악스럽다"며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는 그럴 수 없다"고 개탄했다.

산악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에베레스트 등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일반인들은 모른다"며 구조에 나서지 않은 이들을 이해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산소통만 주고 왔어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뉴질랜드 오타고대의 필 에인슬리 박사는 "조난자에게 여분의 산소통을 주고 더 낮은 곳으로 옮겨다 놓기만 했어도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가세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에베레스트에서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함께 등반하던 일행이 숨진 것으로 판단해 산에 두고 내려온 호주 산악인 링컨 홀(50)이 미국인 댄 마쥐르의 도움으로 하루 만에 살아 돌아온 것이다.

홀은 25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8700m 쯤에서 갑자기 쓰러져 산에 남겨졌다. 다음날 정상으로 향하던 길에 홀을 발견한 마쥐르는 그의 생명이 붙어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구조를 요청했다. 그 뒤 구조팀과 함께 홀을 산 아래쪽에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옮겨 놓았다. 홀은 구조 하루만인 27일 혼자 걸어서 내려올 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뉴욕 타임스는 "홀이 이렇게 빨리 회복했다는 것은 도움을 받지 못해 숨진 영국인 샤프가를 누군가 도왔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고 전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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