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체시-성격규정 싸고 "백가쟁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80년대 시단을 풍미해온 「해체시」가 그 개념정립과 앞으로의 전개방향을 놓고 백가쟁오의 주장속에 방황하고 있다.
어느시대보다 암울했고 격변했던 80년대를 마감하는 올해 벽두부터 기존의 시 양식을 파괴하면서 낯선 충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이제 시단의 일반적 경향으로 굳혀진 「해체시」에 대한 성격 구명작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시적 기법이나 현실반영의 측면에서 전시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80년대의 새로운 시들에 대해선 평자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이 시들은 전위적 측면에선 실험시·전위시, 양식파괴적 측면에선 반시·비시·형태파괴시, 그리고 표현시·개방시·텍스트시·나체시 등 갖가지 이름으로 불려오면서 이들 명칭을 적절히 아우르는 개념으로서의 「해체시」란 명칭이 문학평론가 이윤택씨에 의해 처음으로 붙여졌다.
이씨는 『삶의 풍경성으로서 오도된 모더니즘, 현재적 일상의 느낌으로 환치되지 못하는 전통적 서정 등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과 갱신의 과정으로 80년대의 해체논리는 진전된다』(『현대시학』1월호)는 이론을 전개, 해체가 모더니즘과 전통적 서정에 대한 반발로 출발한 것으로 봤다. 따라서 이러한 해체는 전환기 사회에 직면한 시인들의 반성적 질문이자 나름의 방법적 응전의 산물인 상황시로서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과 문학의 접전양상은 ▲자기해체를 통한 속죄와 반성적 거듭남으로 표현하려는 표현주의적 고백과 외침 ▲대중계도적이고 정치적 합목적성을 띤 문학운동으로 전개되는 두 방향이 있는데 전자는 해체시, 후자는 민중시적 경향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때문에 80년대 시의 급진적 양상을 해체시·민중시로 구분하여 대립항에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와같이 이씨는 80년대에 급진적으로 나타난 모더니즘계열의 형태파괴시와 리얼리즘계열의 민중시를 상황에 따른 대처로 포괄시키면서 해체시를 특이한 문학적 성향으로 보지 않고 좀더 일상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서정으로의 발전적 지평을 연 과도기 문학형태로 보고 있다.
이씨의 이같은 해체시논에 대해 문학평론가 남진우씨는 해체시의 범주와 이론의 허약성을 지적하고 나왔다. 그는 『80년대 시단의 새롭고 뛰어난 시도를 모두 해체로 보는 이씨의 적극적 포괄원리는 논리전개에 있어 너무 많은 허점을 노출시켰다』(『문학정신』2월호)고 비판했다.
일단은 해체시가 민중시와 다른 차원에서 당대의 현실을 양식화한다는 취지아래 출발·전개·확산돼왔기 때문에 민중시와는 다른 궤에서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씨는 해체를 특정유파를 가리키는 말로 지나치게 축소, 적용할 필요는 없지만 아울러 지나치게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해체가 지닌 전위적 성격을 희석시키지 말고 적정선에서 수렴, 구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해체를 한국의 80년대라는 시대·상황에만 가두지 말고 통시적으로, 또는 범세계적 전위문화현상의 일환으로 구명하자는 주장은 여러 평자에게서 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평론가 김준오씨의 『80년대 실험시는 김춘수·이승훈 등의 모더니즘계열의 현실세계 해체에 의한 외부세계 희석화를 현실참여적 모더니즘으로 극복했다』(『현대시학』1월호)든가 박상배 교수(한양대)의 『우리 해체시는 자생적이면서도 60년대 구미에서 성행했던 구체시, 미국의 개방시·팝시 등과 정신적 배경이 닿아있다』는 말은 시사적이다.
「해체시」를 포괄적으로 봄으로써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해체」라는 일반문학론으로 흘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80년대 우리문학의 두드러진 한 양식으로서 리얼리즘·모더니즘 혹은 서정시 등 어느 계열에 자리매김할 것인가가 해체시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