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조의 촛불, 진보단체의 촛불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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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 처음 열렸다. 어느덧 2년이 지나 ‘촛불 2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다시 열렸다. 주최(‘박근혜 퇴진 촛불 2주년 조직위원회’) 쪽 추산으로는 1000여 명, 경찰 추산으론 400여 명이 모였다. 2년 전 촛불시위에는 하루에만 전국에서 최대 190만 명이 모인 것을 비롯해 다섯 달 동안 누적 연인원이 150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생업으로 복귀해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 며칠 전 모인 1000명이 초라하다거나 규모의 크고 작음을 따질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날 집회에서 부각된 촛불 민의, 이른바 ‘촛불정신’이다. 집회에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청산되지 않은 적폐세력들이 국회·정부·사회 내에서 고개를 쳐들며 촛불 민의를 부정하고 왜곡하기에 여념이 없다”고 주장했고, 김준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정당 지지율만큼 국회를 구성해 책임 정치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거구제 개편을 강조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했다. 최근 노조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랬더니 공기업에서 고용세습을 하다 들켜 청년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런 진짜 적폐는 ‘가짜뉴스’로 규정하면서 앞에 나와 촛불정신을 말했다.

2년 전 촛불시위대의 “이게 나라냐”라는 절박한 물음 속에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분노와 함께 정상적인 국정에 대한 강한 열망이 실려 있었다. 진보·보수를 넘어 사회 양극화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분열을 타파하고 어려운 서민의 삶을 해소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바로 촛불정신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진보단체의 촛불, 노조의 촛불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보편타당한 상식을 회복하자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는 동안 촛불정신을 멋대로 해석해 독점하려는 흐름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이나 민변 등의 주장을 촛불 민의로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과거 촛불을 들었으나 그제의 ‘촛불 2년’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은 지금 누구를 위한 촛불정신인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