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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암환자들이 새벽마다 그곳에서 줄 서 있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중국인 장줘준은 위암 3기 어머니를 위해 항암제를 직접 만든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암센터가 없어서 다른 동네 병원을 가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자신이 사는 동네가 아니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달에 200만원가량인 항암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는 인터넷으로 항암제 원료를 구입해 사람들에게 배운 조제법으로 항암제를 만든다. 그가 이제껏 만든 항암제 종류만 7가지가 넘는다.

개혁·개방을 기치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 하지만 빠른 성장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제도들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공공 의료 체계입니다. 13억 인구를 책임질 1차 의료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서민들은 진료의 기회조차 쉽게 얻을 수 없는 형편이 됐습니다.

거주지 밖 병원에선 의료 보험 혜택 못받아 #지역 내 암센터 없을 경우 선택의 여지 없어 #부유층은 해외 원정 의료 당연시하는 상황 #한국 의료업계에는 중국 시장 큰 기회될 수도

중국에서는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직접 약을 조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출처 NYT 뉴스]

중국에서는 비싼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직접 약을 조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출처 NYT 뉴스]

중국에 거주하고 계신 분이라면 중국에서 치료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실 겁니다. 불결하고, 불친절하고. 그러니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큰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바로 치료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우리 의료업계에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병원이 중국 의료분야에 진출합니다.

위암 3기인 어머니를 위해 항암제를 만드는 한 중국인 [출처 NYT 뉴스]

위암 3기인 어머니를 위해 항암제를 만드는 한 중국인 [출처 NYT 뉴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30일 중국 의료 실태를 보도했는데요.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암센터 앞은 매일 새벽잠을 포기하고 진료 대기 줄을 서는 사람으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새벽 1시부터 줄을 서지만, 운이 없으면 진찰을 못 받고 다음 날 똑같이 줄서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일찍 줄을 서도 대기표 판매상에게 표를 사지 않으면 경호원이 병원 출입을 막기도 합니다. 대기표 판매는 불법이지만 암표상은 의사와 사전 약속 시간을 확보하고 경호원과 함께 매일 새벽 환자에게 거액을 받고 출입표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상하이 푸단대병원 암센터 앞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선 환자들로 북적인다 [출처 NYT 뉴스]

매일 새벽 상하이 푸단대병원 암센터 앞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선 환자들로 북적인다 [출처 NYT 뉴스]

중국은 후커우(戶口·호적) 제도에 따라 자신의 출생지 내에서만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암 전문의가 없는 지역에서 태어난 환자에게 후커우 제도는 카스트 제도나 다름없습니다. 일반 진료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많은 중국인은 낮은 임금을 받는 지역 일반의를 '실력 있는 의사'로 보지 않고 지역 1차 의료 체계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직접 약을 조제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항암제 원료도 온라인을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출처 NYT 뉴스]

중국에서는 직접 약을 조제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항암제 원료도 온라인을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출처 NYT 뉴스]

1960~198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에는 광범위한 공공 보건 체계가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은 도시 의사를 지방에 파견해 일반 농민을 적각의생(赤脚醫生), '맨발의 의사들'로 양성했죠. 공공 보건 인력이 충원되며 1960년 44세 수준이던 기대 수명이 1970년 63세까지 높아졌습니다.

1980년대 중반, 중국 정부는 대규모 경제 개혁과 동시에 국민이 병원 전문의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병원의 정부 보조금은 큰 폭으로 삭감됐고, 병원은 제각기 이득을 최대화해야 할 수단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의료 문화의 변화는 병원 의사가 제약 회사의 리베이트, 빨간 봉투에 담긴 환자들의 현금 뇌물을 당연시하도록 했습니다.

매일 새벽 상하이 푸단대병원 암센터 앞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선 환자들로 북적인다 [출처 NYT 뉴스]

매일 새벽 상하이 푸단대병원 암센터 앞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선 환자들로 북적인다 [출처 NYT 뉴스]

의료인에 대한 불신은 폭행 사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료진을 향한 모욕, 폭행, 분쟁을 가리키는 중국 내 신조어(医闹)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지난 3월, 한 의사가 자기 환자의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2016년 11월에는 자신의 딸에게 내려진 의료진의 처방에 불만을 품은 한 남자가 딸이 사망하자 해당 의사를 15차례 칼로 찔러 죽인 사례도 있었습니다. 중국병원협회는 2012년 의료 기관 한 곳당 평균 27.3건의 폭행 사태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의료인에 대한 폭행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출처 NYT 뉴스]

의료인에 대한 폭행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출처 NYT 뉴스]

이미 중국의 부유층 사이에선 해외 원정 의료가 당연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중국의 의사(일반의) 수는 인구 1만 명당 1.5명 수준에 불과한데요. 중국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가정이 2020년까지 주치의와 계약을 맺도록 하고 방문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역 일반의에게 환자가 필요할 경우 최고 수준의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권한도 줬습니다.

중국의 의사 수는 환자 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출처 NYT 뉴스]

중국의 의사 수는 환자 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출처 NYT 뉴스]

공공 의료 체계를 다시 세우려면 막대한 투자는 물론 시스템이 정착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요. 무너진 의료 산업이 자리를 잡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 예상됩니다. 물론 그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차이나랩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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