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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안개』신드롬…주부들 "암 공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박수현씨(38·주부·광주시 주월동 장미아파트)는 요즘 갑자기 이따금 배에 통증을 느낀다.
최근 방영된 MBC-TV 미니시리즈『겨울안개』를 즐겨보는 그는 자궁암을 잃고 있는 주인공 명애(김혜자분)의 증세가 「허리가 아프고 배가 쌀쌀 아픈」것을 보고 평소자신의 허리 아픈 증세와 비슷하다고 여기면서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박씨는 『나만 그런줄 알고 이웃에 얘기를 했더니 모두들 요즘 부쩍 허리가 더 아프고 자주 배까지 아파 온다고 하더라』고 들려줬다.
이른바 「겨울안개 신드롬(증후군)」이 나타난 것이다.
김정수 극븐 김한영 연출로 지난9일부터 31일까지 8회에 걸쳐 방영된 『겨울안개』는 지방대학교수인 남편과 자녀교육문제로 떨어져 지내는 중년 별거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것.
알뜰살뜰 살림을 해서 집 늘려가는데 보람을 느끼며 살던 아내는 어느날 뜻하지 않게 자궁암이란 진단을 받고 「불치병」이란 공포에 휩싸여 남편을 찾아 나선다.
남편의 자취아파트에서 낯선 사내아이를 발견한 아내는 남편의 사생활을 의심하게 되고, 자녀들마저도 자기들의 생활에만 몰두하는 것을 보고 치료를 거부하며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MBC심의실이 자체 조사한 시청률집계에 따르면 6회까지의 평균 점유율이 44·3%로 나타났으며 6회가 방영된 지난 24일에는 점유율 52·3 %, 시청률 66·3 %로 최고를 기록,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것으로 분석됐다.
시청자들의 인기도와 걸맞게 드라마 신드롬도 확산돼 자궁암진단을 받으려는 이들로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암 전문센터로 명성이 높은 서울원자력병원의 경우 지난1월 한달간 하루평균 1백78명이 자궁암 검사를 받은 것으로 집계돼 지난 한해동안의 하루평균 1백13명에 비해 무려 57·5%가 증가했다. 원자력병원 김치근 기획실장은 『미처 검사를 받지 못하고 시간이 늦어 돌아간 이들도 상당수이고 병실도 자궁암 치료환자로 많이 찼다』며 『TV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종합병원뿐 아니라 의원급 개인병원도 마찬가지. 남산부인과의원(서울 통의동) 남상익 원 장은 『평소에 비해 자궁암을 체크하려는 환자들이 20∼30% 늘었다』고 말하고 『계속적으로 정기체크를 하던 이들 가운데도 검진일자가 지난줄 모르고 잊고 있다가 드라마를 보고 깜짝 놀라봤다는 이들도 상당수』라고 들려줬다.
이같은 드라마 신드롬은 『겨울안개』뿐은 아니다. 지난해9∼10월 중년기혼 남성의 불륜관계로 인해 상처받는 중년주부의 모습을 담은 『모래성』이 방영됐을 때 대다수 주부들이 남편의 또 다른 여자관계를 묻거나, 남편의 귀가시간을 놓고 부부싸움을 벌인 가정이 많았던 것도 드라마 신드롬의 일종이다.
연세대 서정우 교수(신문 방송학)는 『드라마 신드롬이 나타나는 것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예방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공포라는 부정적 측면이 함께 있다』고 말했다.
서교수는 『특히 주부층에서 이같은 증후군이 많은 것은 정보에 노출될 기회가 적은데다 TV가 유일한 오락매체인 까닭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거리를 가지고 비교해 보는 시청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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