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치료감호 전력” 호소에도 엄벌한 법원…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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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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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치료감호 전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범행 당시 심신장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을 계기로 “심신미약이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 1부(부장 임광호)는 이웃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하모(50)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하씨는 지난 4월 10일 오후 7시 25분쯤 부산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웃 주민 A씨의 배와 등·목 부위를 흉기로 6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씨는 흉기가 부러지자 다른 흉기를 들고나와 범행을 이어갔고, A씨가 달아나자 쫓아가 그를 제압하고 살해했다.

하씨는 “A씨 집에서 망치질 소리 등 시끄러운 소리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범행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 집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음은 없었고, 하씨는 A씨가 소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판단했다.

하씨는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을 주장했다. 형법상 심신미약·상실 감경 규정에 따르면 법원은 정신장애가 있거나 만취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 형사 책임을 감경해준다.

하씨는 2002년부터 약 16년 동안 우울증으로 70여 차례 통원치료를 받은 전력과 2012년 중·상해 범죄를 저지르고 2년 6개월간 치료감호를 받은 전력을 내세웠다.

그러나 법원은 이런 하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 변별 능력이나 행위통제 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근거였다.

재판부는 “2016년 증상이 호전돼 치료감호가 종료됐고, 심각한 정신병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입원치료 등의 조치는 없었다”면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도구를 숨기고 찾아갔고, 피해자가 달아나자 복도 창문으로 피해자 위치를 확인하고 쫓아가 저항하는 피해자를 제압하고 살해하는 등 피고인은 범행 당시의 상황, 범행의 의미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충분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은 피해자의 행동으로 범행이 유발됐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등 범행을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지금까지 유족들로부터 용서받지도 못한 점을 고려해 엄벌했다”고 밝혔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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