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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예상한 듯 세면 도구 등 준비|장세동씨 수감되던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5공 비리 수사의 대단원이 「장씨 구속, 이·안씨 귀가」로 최종 결론이 나자 지금까지 5공 핵심 인물과 검찰의 한판 「힘 대결」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못내 실망하는 분위기.
장씨의 구속 영장을 발부할 판사조차 『들끓던 사회적 비난 여론에 비해 범죄 사실이 극히 일부인 것 같다』고 말할 정도.
한편 주역인 장씨는 막상 구속되면서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호칭을 「어른」이라고 하며 조금도 원망의 빛을 보이지 않았으며 구속에 대비, 세면 도구까지 이미 갖춰 검찰의 소환에 응하는 등 치밀한 면모를 보였다고.

<서울 구치소로 직행>
구속이 진행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동해 내려온 장씨는 면도를 한 말쑥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피곤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아 이틀동안 수사 받은 흔적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사관 2명에게 수갑을 차지 않은 양팔을 끼인 채 손에 007가방을 든 장씨는 보도진이 몰려 큰 혼잡을 빚는 와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청사 계단을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검찰청 소속 서울 1고 2301호 감청색 스텔라 승용차에 올라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서울 구치소로 직행.
장씨는 검찰 현관에서부터 차에 타기까지 20여m를 5분에 걸쳐 걸어가면서 기자들이 『혐의는 인정하느냐』『억울하지 않느냐』『정치 보복으로 생각하지 않느냐』는 등의 질문을 수십 마디 반복해 묻는데도 일체 말을 하지 않아 체질적인 「정보통」으로서의 면모를 과시.
다만 검찰 수사관들이 밀리는 보도진을 밀며 앞으로 빨리 나가려하자 『천천히 갑시다』는 말만 몇번씩 되풀이.
이날 장씨의 구속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검찰청 안팎에는 내외신 보도진 1백여명이 몰려 큰 혼잡을 빚었다.
장씨에 대한 구속 영장은 27일 오전 11시50분 대검중수부 4과장 이종찬 부장 검사가 청구, 이날 당직 판사인 서울 형사 지법 3단독 권진웅 판사가 3시간 동안의 기록 검토를 거쳐 오후 2시50분쯤 발부했으며 오후 3시40분쯤 장씨의 구속이 집행
권 판사는 영장 서명 후 기자들에게 『특별한 소감은 없으나 사회적인 비난 여론에 비해서는 범죄 사실이 극히 일부인 것 같다』고 피력.

<군신 관계 의리 지켜>
장씨는 수사 받는 도중 전두환씨를 언급할 때마다 항상 「어른」이라고 호칭하고 전혀 원망의 빛을 보이지 않는 등 철저한 군신 관계의 「의리」를 보였다고.
장씨는 자신에게 추궁되는 혐의 사실에 대해 누구에게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의 책임으로 돌렸으나 단지 일민 재단 기금 모금 과정에서 강제성이 있었다는 기업가들의 얘기에 대해서는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것.
수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수사 받는 태도로 보아서는 죄는 밉지만 인간적으로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이구동성.
장씨가 검찰에 소환될 때 들고 있어 관심을 끌었던 007가방에는 간단한 메모 쪽지와 세면도구·내의·성경 등이 들어 있었다고 수사관들이 전언.
이에 대해 한 수사관은 『생활에 필요한 기본 도구를 마련해온 것으로 보아 장씨는 자신의 소환이 곧 구속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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