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힘들다는데 세금은 작년보다 23조 더 걷힌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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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호조세가 계속되면서 올해 8월까지 세금이 지난해보다 23조7000억원 더 걷힌 것으로 나타났다. 체감 경기는 얼어붙는데 세수만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11일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월간 재정 동향 10월호’에 따르면 올해 1∼8월 국세 수입은 213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3조7000억원 늘었다.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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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목표 세수 대비 실제 걷힌 비율을 뜻하는 세수 진도율은 1년 전보다 4%포인트 상승한 79.5%를 기록했다. 1년 동안 걷을 세금 가운데 80%가 1~8월 중에 이미 걷혔다는 뜻이다.

세수 증가는 법인세와 소득세가 이끌었다. 8월 법인세는 1년 전보다 1조7000억원 증가한 12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호황 등에 따라 기업 실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법인세 진도율은 87.2%를 기록했다. 8월 소득세는 양도소득세 증가와 명목임금 상승 등에 힘입어 1년 전보다 8000억원 증가한 7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소득세 진도율은 81.5%였다.

한편 8월 부가가치세는 수출 증가에 따른 환급 증가로 인해 전년 동월보다 줄었다. 정부의 실질 재정 건전성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8월 3조50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1~8월 누계로는 12조원 적자였다.

문제는 세수 호황이 일부 고소득층과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면세자 비율이 48%로, 일정 소득 이상의 사람에게 세금을 세게 물리면 근로 의욕이 저하돼 국가 생산성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세금 인상분을 직간접적으로 기업에 환원해야 일자리 증가·투자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세수 호황만 믿고 복지 재정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세수가 줄어도 복지 재정을 축소하기란 어렵다고 지적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건전한 국가 재정이 우선이며 근로장려세제(EITC) 등 소득 재분배는 세수입이 더 걷힌 범위 내에서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세수가 많이 걷혔다는 것 자체가 민간의 가용자원을 정부가 가져갔다는 뜻”이라며 “정부는 세수 확대가 자칫 민간 부문 위축을 초래하지 않도록 세입과 세출을 맞추는 게 이상적이다”고 덧붙였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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