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보다 독과점 해소" 경제력 집중 억제에서 시장 경쟁 촉진으로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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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승(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은 24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밀레니엄 포럼에서 "과거 공정위는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며 개별 시장의 독과점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또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대단히 거칠고 무식한 제도로 예외가 너무 많고 복잡하다"며 "다른 대안을 찾아보겠다"고 덧붙였다.

권 위원장의 이런 발언은 대기업 정책의 기본 방향을 과도한 경제적 집중을 억제하는 것에서 경쟁을 촉진하는 쪽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여러 사업 분야에서 계열사 간 부당 지원을 통해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정위의 감시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출자총액제한제도처럼 인위적으로 대기업의 확장을 막는 제도는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권 위원장은 다만 "한국처럼 소유지배 구조의 왜곡이 심한 상황에서 소유지배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 경쟁 촉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며 "소유지배 구조의 왜곡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유지배 구조의 왜곡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로 거론되고 있는 지주회사제도와 관련, "복잡한 지배 구조를 합법화해 줄 수 있어 완벽한 제도라고 볼 수 없다"며 "기업들에 지주회사 전환을 권유하지 않을 것이며 대안은 기업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는 지금보다 엄격하게 법을 적용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권 위원장은 "독일 등 유럽에서처럼 같은 행위라도 일반 사업자는 할 수 있지만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아파트 부녀회의 가격 담합과 관련해선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외부 논리에 휘말려 아파트 부녀회 담합 등 공정위가 할 수 없는 부분에까지 개입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사업자와 사업자단체에만 적용되는 법으로 일반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을 제재할 근거가 없다. 권 위원장은 또 "공정위로부터 제재받은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리는 신문공표 명령 등 불필요한 조치도 없애겠다"고 밝혔다.

◆출자총액제한제도=자산 규모가 6조원을 넘는 그룹에 속한 계열사는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기업에 투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제도. 공정위는 7월부터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시장경제선진화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해 출총제를 대신할 새로운 대기업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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