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안전설비 부실?…대형 재난 피한 고양 휘발유 탱크 화재, 원인 '오리무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양 휘발유 저장탱크에서 발생한 불이 꺼지는 데까지 17시간이 걸렸다. 인명피해 없이 화재진화를 완료한 것을 두고 기적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소방관들이 7일 고양시 강매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고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소방관들이 7일 고양시 강매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고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불은 7일 오전 11시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고양 저유소)의 한 휘발유 저장탱크에서 발생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휘발유 탱크가 폭발하면서 불이 났다. 폭발 소리는 고양 저유소 밖까지 들릴 정도였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최초 신고를 접수한 것도 당직을 서고 있던 직원들이 아닌 폭발 소리에 놀란 인근 주민이다.

고양 저유소에는 대형 휘발유 저장탱크 14개를 포함해 지하 1개, 옥외 19개 등 총 20개의 저장탱크가 있다. 불이 난 곳은 옥외 유류 저장탱크로, 440만L의 기름이 들어있었다. 이는 주유소 100곳가량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이다. 불이 모여 있던 다른 옥외 저장탱크로 옮겨붙으면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유류 저장탱크 간 거리는 20m에 불과하다. 불길이 치솟은 유류탱크 20m 옆에 기폭제들이 산재했던 셈이다. 이날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관들조차 불길이 사그라지기 전까지는 열기로 인해 100m 이내로는 접근하지 못했다. 고양 저유소에 저장된 기름의 총량은 7000만L가 넘는다.

유류 440만L가 적재된 1개 탱크의 불을 끄는 데만 205대의 장비와 684명이 동원됐다.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의 특성 때문에 경기도는 물론 서울과 인천의 소방인력까지 급파됐는데도 불길을 잡기까지 17시간이 걸렸다.

콘크리트 외벽 등 불이 옮겨붙는 걸 방지하기 위한 설비가 돼 있었지만 화재가 번질 수도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기름에 불이 붙을 경우 기름이 끓어 넘쳐서 흘러내릴 수가 있다”며 “고온의 기름이 흘러내리는 걸 막지 못했다면 불이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이 7일 고양시 강매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고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소방관들이 7일 고양시 강매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고 화재를 진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화재가 일요일에 발생하면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고양 저유소는 주말을 당직 근무자 체제로 운영한다. 이날 당직 근무자는 6명으로, 불이 났을 당시 200m가량 떨어진 사무실에 있었다. 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는 “주말이라 현장에 근무자가 없었기 때문에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안전설비 부실에 의한 ‘인재’를 의심하고 있다. 외부 요인 없이 유류탱크에 불이 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정전기나 스파크를 방지하는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법적으로 저유소 유류탱크 등의 위험물이 안전점검 의무 대상에서 빠져있다”며 “정전기 감지 센서나 거품을 발사해 긴급 소화하는 장비가 고장 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경찰, 대한송유관공사 등과 함께 합동 현장 감식을 진행해 화재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릴 방침이다. 고양 저유소는 수도권에 석유를 공급하기 전에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곳으로 주요 국가기반시설 중 하나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