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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에서 쏟아진 이해찬 대표의 부적절한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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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0·4 남북공동선언 11주년을 기념해 4~6일 방북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평양에서 한 발언들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대표는 5일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정권을 뺏기면 (교류를) 못 하게 되기에 제가 살아 있는 한 절대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자들에게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북한 땅에서 남북 교류와 한반도 평화 의지를 강조한 걸 탓할 이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집권당 대표라면 북한에서 할 말이 있고, 피해야 할 말이 있다. 보혁(保革) 논쟁의 정점인 국보법 개폐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갈가리 찢어온 뇌관 중 뇌관이다. 이런 민감한 문제를 이 대표가 굳이 북한 땅에서 꺼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국보법 개폐는 국내 정치권이 국회에서 결정할 일이지 북한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공연히 야당의 극한 반발을 불러 남남 갈등만 확대될까 우려된다.

‘살아 있는 한 정권 고수’ 발언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정당인이 정권 재창출 의지를 밝힌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 수뇌부(김영남)가 이 대표에게 “남녘 동포들이 보수 타파 운동에…(나서야 한다)” 같은 내정 간섭 발언을 한 마당에 이 대표가 그런 말을 한 건 “북한 노동당과 손잡고 야당을 궤멸시켜 장기 집권하겠다는 뜻이냐”는 오해를 살까 우려된다.

여권이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인상을 주면 야당은 남북 교류를 전면 반대하며 극한투쟁으로 선회하기 십상이다. 남남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야당을 자극하는 당파적 발언을 삼가고 그들의 입장을 경청해 초당적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4·27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를 비롯해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남북 교류 프로세스는 한 발짝도 전진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