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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영리병원 좌초 가능성 커져…공론조사 58.9% 반대

중앙일보

입력

제주 녹지국제병원 외경. 최충일 기자

제주 녹지국제병원 외경. 최충일 기자

제주도민들이 국내 1호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찬반을 묻는 질문에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많이 냈다.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여부에 대한 공론조사 결과 반대가 58.9%(106명), 찬성 의견이 38.9%(70명)였다. 2.2%(4명)는 판단을 유보했다.

의료 공공성 약화 우려가 66%로 가장 걸림돌 #제주도민, 지역에 큰 도움이 안될 것으로 판단

지난 2월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가 영리병원에 대한 공론조사를 청구함에 따라, 지난 3월부터 공론조사 절차를 밟아온 데 따른 결과다.

제주특별자치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공론조사위)는 지난 4일 도민참여단 180명을 대상으로 최종적으로 실시한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여부에 대한 이런 투표 결과를 공개했다.

4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 회의. 최충일 기자

4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 회의. 최충일 기자

제주도는 전 정부 때 추진된 전국 첫 영리병원인 만큼 새 정부와의 의견 조율이 더 필요하다며 개설 허가의 법정 처리기한을 6차례 미뤄오다 숙의형 공론조사 방법을 택했다. 숙의형 공론조사 방법은 배심원제와 비슷하다. 찬반이 뚜렷한 사안에 대해 판단 근거를 충분히 제공한 후 토론을 통해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공론조사위는 지난 8월15일부터 일주일간 제주도민 3000명을 대상으로 영리병원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토대로 도민참여단 200명을 모집했다.

제주특별자치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녹지국제병원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가 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도민참여단은 질의응답 과정 등을 거친 후 지난달 16일 1차 숙의토론을 했다. 지난 3일 제주특별자치도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차 토론과 최종 설문조사에는 180명이 참가했다. 여기서 공론조사위는 제주도에 ‘녹지국제영리병원개설 불허’를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외경. 최충일 기자

제주 녹지국제병원 외경. 최충일 기자

도민들이 개설 불허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영리병원들의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할 것’(66%)을 들었다. ‘유사사업 경험이나 우회투자 의혹 등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12.3%), ‘병원의 주기능인 환자 치료보다 이윤 추구에 집중할 것 같아서’(11.3%)라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 조사결과는 95% 신뢰 수준에서 오차범위 ±5.8%포인트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부 모습. 최충일 기자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부 모습. 최충일 기자

개설 불허 의견은 1차 조사에서 39.5%였으나 2차 조사에서 56.5%, 3차 조사에서 58.9%로 점차 높아졌다. 최종인 3차조사에서는 남성(50.5%)보다 여성(68.2%)의 개설 불허 선택 비율이 높았다. 연령별로는 19~39세는 69%, 40∼59세는 67.4%가 개설 불허를 선택했다. 유일하게 60세 이상에서만 개설 허가(57.7%)가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제주시는 60.4%, 서귀포시는 54.3%가 각각 개설 불허를 선택했다.

공론화과정 전반의 공공성에 대해서는 83.9%가 공정했다고 답했다. 공정하지 않다는 답변은 5%에 그쳤다. 최종 결과를 존중하겠다는 비율은 76.7%를 기록했다. 이날 공론조사위원회가 결과를 토대로 제주도지사에게 ‘녹지국제영리병원 개설 불허’ 권고를 제출 할 것인 만큼 박근혜 정부 사업승인을 받았던 녹지국제병원은 최종작으로 좌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부 모습. 최충일 기자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부 모습. 최충일 기자

공론조사위는 영리병원 불허 결정과 보완의견을 함께 냈다.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비영리병원 등으로 활용해 제주헬스케어타운 전체 기능을 유지하고, 이미 고용된 사람들의 일자리와 관련해 제주도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가능한지 검토를 주문했다.

공론조사위 권고안은 4일 오후 제주도에 제출됐다. 제주도는 권고안을 참고해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허가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녹지국제병원은 국내 첫 영리병원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돼왔다. 반대측은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반면 찬성측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며 영리병원 허가를 주장해왔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출입구로 들어가는 직원들. 최충일 기자

제주 녹지국제병원 출입구로 들어가는 직원들. 최충일 기자

한편 병원 주체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는 이 같은 결과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녹지측은 병원 운영비로 매달 약 8억5000만원을 지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출신 인력을 중심으로 의사·약사·간호사·코디네이터 등 100여 명 이상을 채용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부 모습. 최충일 기자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부 모습. 최충일 기자

만약 제주도가 공론화조사위 권고사항을 근거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최종 불허하면, 녹지측은 그간의 손해 등을 감안해 제주도 등을 상대로 수백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전망이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외부에 있는 점자 안내판. 최충일 기자

제주 녹지국제병원 외부에 있는 점자 안내판. 최충일 기자

녹지국제병원은 중국 녹지그룹이 총 778억원을 투자해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2만8163㎡ 부지에 46병상(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졌다. 지난해 7월 건물이 완공되자, 같은해 8월 28일 제주도에 외국 의료기관 개설허가 신청서를 냈지만 아직까지 최종 허가 여부를 기다리는 중이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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