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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핵사찰 속도내는 美…"北 30년간 만든 핵리스트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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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중앙일보]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중앙일보]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관철시키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일단, 연내 사찰에 착수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이후 핵시설 폐쇄 등 실질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할 계획이다.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에게 오스트리아 빈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함께 구체적인 사찰 방법을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안드레아 톰슨 미 국무부 군축ㆍ국제안보 차관은 대규모 사찰단을 꾸리기 위해 핵ㆍ미사일 전문가 인선에 들어갔다. 10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확답할 경우 곧바로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서다.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 인터뷰 #제네바ㆍ6자 합의, 영변 핵사찰 책임자 #"30년 핵물질ㆍ핵무기 생산내역 받아야"

북한ㆍ이란 핵사찰을 담당했던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27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단순 참관이 아닌 사찰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30년 전부터 얼마나, 어떻게 핵물질ㆍ핵무기를 생산했는지에 대한 완전한 신고”라고 말했다. “이에 실패한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7년 6자회담 합의(2.13 합의와 10.3 합의)와 전혀 다른 출발을 하려면 협상 단계부터 IAEA가 참여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하이노넨 박사와의 주요 문답.

1994년과 2007년 사찰 책임자로서 조건부 영변 사찰 허용을 어떻게 보나.

“영변은 단순한 핵시설이 아니다. IAEA가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지만, 해체 작업을 하기 전에 북한 당국으로부터 실제 현장에 있는 시설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완벽한 신고를 받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거기에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 재처리 시설이 있고, 건설 중인 실험용 원자로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추출한 플루토늄을 플루토늄 메탈로 전환해 실제 핵무기를 제조하는 공장이 영변이 있는지 등 추가로 확인할 사항들이 있다. 이런 활동들이 보장되는냐가 문제다. 사찰의 첫 단계는 현재 영변에 있는 시설 뿐만 아니라 과거 존재했던, 운영됐던 시설들을 포함한 핵 활동 전체에 대한 신고다. 30년 전 핵시설을 가동한 첫 날부터 핵물질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했는지도 포함돼야 한다. 신고를 받은 다음에는 IAEA 등이 이를 검토해 해체에 가장 좋은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여전히 신고를 거부하는데.

"핵 신고는 비핵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다. 북한이 정말 비핵화에 진지한지 보여줄 시험대이기도 하다. 핵신고서를 제출한다면 북한은 1994년, 2007년과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명히 대가를 요구하겠지만 이해할 수 있다. 제네바 합의 때는 IAEA가 최종 검증단계에서 북한에 요구하기 위해 검증 리스트를 작성했는데 30페이지 분량이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훨씬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고 분량도 엄청날 것이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이 2007년 6월 26일 IAEA 영변 사찰단 복귀 논의를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AP=연합뉴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이 2007년 6월 26일 IAEA 영변 사찰단 복귀 논의를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AP=연합뉴스]

숨겨진 핵시설도 있어 영변 해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나도 동의한다. 우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거대한 복합체와 같다. 핵 활동의 일부는 영변, 일부는 강선과 함흥에서도 벌어진다. 이중 영변은 대부분의 핵분열 물질을 생산하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임은 틀림없다. 영변에서 플루토늄 전부와 농축우라늄의 일부를 생산한다. 우리는 동시에 북한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체 작업에 들어가기 전 영변을 포함한 핵시설에 대한 완전한 신고부터 받는 게 중요하다. 큰 그림을 먼저 파악한 뒤 비핵화 우선순위에 대한 신중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어떤 검증 활동이 사찰에 중요한가.

“영변 시설을 해체하기 전에 사찰단은 개발과 운영을 담당한 사람들과 만나 이 시설의 가동 역사를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라늄 농축공장과 재처리공장에서 샘플(시료)을 채취하고 핵 신고와 샘플 채취에 만족할 때만이 그 다음 해체를 시작해야 한다. 해체로 인해 증거가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검증은 94년 제네바 합의와 2007년 6자 합의에선 할 수 없었다. IAEA가 동결 대상 시설에 대해 제한된 감시밖에 할 수 없게 한 합의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핵 신고부터 출발부터 달라져야 한다. 또 한 가지 영변 사찰과정에서 민감한 핵무기 관련 정보를 어떻게 다룰 지도 중요하다. 핵확산을 막기 위해선 기존 핵 보유국만이 핵 생산 정보를 다루도록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

영변 단지 안에 핵무기 직접 제조 공장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방문했던 2007년 7월 IAEA 보고서에 플루토늄 무기화를 언급한 바가 있다.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 건물에 방사화학연구소가 함께 있다. 북한은 그곳에서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플루토늄 메탈로 전환했다. 이는 민간 핵 프로그램에선 사용하지 않는 특정 화학성분을 만드는 과정으로 핵무기 제조에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과거 IAEA가 핵 폐기를 주도했던 사례가 있나.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반 남아프리카공화국 핵 폐기 때 IAEA는 기존 핵보유국들이 파견한 많은 조사관으로 구성된 특별사찰팀을 뒀다. 그 때도 핵확산이 야기될 수 있는 정보들을 특정 방식으로 보호해 다른 조사관들이 알 수 없도록 했다. 이번에도 검증ㆍ해체 계획을 합의할 때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또 핵 폐기를 미사일 프로그램과 완전히 별개로 진행할 순 없다. 미사일은 핵탄두에 맞춰 설계되기 때문이다. 미사일 해체 역시 매우 큰 과제이기 때문에 1990년 초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이라크 특별위원회를 뒀던 것과 같은 특별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의 경우 사찰을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장 해체에 대한 사찰도 동의했다. 그들은 국제사회나 관련 당사국 인사들이 이를 검증할 것이라고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검증을 허용할지 지켜봐야 한다. 알다시피 미사일을 검증할 수 있는 국제기구가 없기 때문에 북한은 아마 미국과 한국ㆍ중국ㆍ러시아ㆍ일본에 동창리 해체 현장 참관을 초청할 것이다. 동창리 시험장 해체는 단순히 그곳을 미사일 개발에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미사일 발사를 위한 특수 장비들은 다른 곳에서 다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비들도 사찰에 포함돼야 한다. 발사장비는 재활용될 수 있어 동창리 발사장에서 철거하더라도 장기적인 감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미사일 시험장 해체는 단순한 참관이 아닌 이같은 검증에 대한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사찰과 참관 표현 차이 만큼 앞으로 협상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미국이 일종의 2단계 접근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1단계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용호 북한 외무상과 비핵화 큰 그림에 합의하는 것이다. 모든 핵무기와 플루토늄·우라늄 핵물질을 북한 밖으로 반출하고 생산시설의 경우 사찰을 거쳐 해체하고, 미사일 프로그램도 비슷한 방식으로 폐기하는 큰 틀의 합의다. 이후 2단계로 사찰을 어떤 방식으로 실시하고 신고서는 어떤 순서로, 무엇을 포함하는지 세부 기술적 사항을 협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티브 비건 특별대표가 다음 주 오스트리아 빈에서 할 일이다. 우리는 과거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7년 6자회담 실패의 교훈에서 얻어야 한다. IAEA가 실제 검증을 하기 때문에 대상과 방법, 시기를 정하는 세부 협상은 IAEA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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