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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증조부와 함께 한 지붕 4대|삶의 보람은 역시 부모공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올해에는 부모님을 더욱 편안히 모시고 농사를 잘 지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족의 꿈입니다.』
급속한 산업화의 물결로 핵가족화 하는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증조할아버지에서 증손자에 이르기까지 4대가 한 지붕 밑에서 오순도순 단란한 가정을 꾸려 가는 경북 영풍군 평은면 용혈2리 678 김선돌 할아버지(79) 일가족.
김할아버지 가족은 지난 5월 20일 아버지 김용일옹(97)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5대가 한집에서 살아 전국 최초의 대가족을 이루였다.
그러나 며느리 강재희씨(57) 등 일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며 눈물을 머금었다.
이 집안은 18세기초 경북 안동에서 이사와 8대째 2백여년간 용혈리 마을에서 대를 이어 살며 밭 1천평과 논1천평 등 2천평의 논밭에 벼농사와 고추·담배·약초를 재배, 연간 1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장 서향식씨(40)는 『김할아버지 가족은 4대가 모두 인심이 좋고 부모를 모시는 효성이 극해 이 영향으로 용혈리 마을 75가구 중 3대 이상 웃어른을 모시는 집이 40가구나 돼 부모 잘 모시는 마을로 이름이 났다』며 자랑했다.
김할아버지 일가족이 사는 집은 8대째 물려받은 25평 규모의 5칸 옛 목조기와집.
가족 수는 세대주인 김할아버지를 비롯, 아들 원순씨(59와 맏며느리 강씨 부부, 손자 주섭씨(33)와 손부 송인덕씨(26) 부부, 손자들의 맏딸 현숙양(8·평온초교2), 둘째딸 미강양(6)과 쌍둥이 동생 정강양(6) ,막내 경남양(4) 등 9명.
손부 송씨는『처음엔 층층시하여서 걱정이 됐으나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와 시조부를 지극히 모시는 것을 보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져 서로 위하는 분위기여서 시집살이가 힘들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부모 공경은 우리 집안의 가훈이여. 부모 잘 모신 자식이 못되는 법이 있겠어. 이게 바로 자식의 도리요 이웃에 대한 인정을 더하는 거지.』
김할아버지는 『또 웃어른이라고 「에헴」하고 큰소리만 쳐선 안되고 무슨 일이든 먼저 해야 자식들이 뒤따르고 손자들이 본을 뜨며 이웃도 절로 따르는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김할아버지는 새해 아침에도 평소처럼 아침 5시에 일어나 쇠죽을 끓이고 마당을 쓸었다.
79세의 고령답지 않게 기력이 왕성한 김할아버지는 봄·여름·가을 등 농사철이면 논밭으로 나가 파종한 고추밭을 매랴, 볏단을 나르랴 바쁘다.
파종 때와 벼농사에는 아들·손자들이 의논한 후 김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 결정을 한다는 것.
비록 대가족의 가장이지만 김할아배지가 『이렇게 하라』고 단독결정해 지시하는 적이 없어 김할아버지의 집안은 항상 오순도순 화목하다.
농한기를 맞고부터는 4대가족이 함께 야산에 가 땔감나무를 손수 해 지게를 지고 줄줄이 오는 모습은 김할아버지 가족이 아니고는 전국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정다운 광경.
집안 살림은 손자 주섭씨의 부인이 도맡아 하지만 사소한 일에서부터 집안잔치등 대소사까지 하나하나 시어머니인 강씨와 상의해 처리해 손부 송씨는 결혼생활 8년 동안 고부간의 갈등이나 얼굴한번 붉힌 적이 없었다고.
이 때문에 4대가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시아버지·시어머니까지 큰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간 일을 본적이 없다는 것.
『만년 젊음이 아니여. 세월이 가면 늙게 마련인데 당연한 이 섭리를 젊은이들이 자칫 잊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
김할아버지는 『핵가족도 좋지만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느냐』며 『올해는 부디 부모 모시고 공경하며 잘사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늙고 병든 부모 모시기가 귀찮아 길가에 버리거나 학대에 못 배겨 집을 뛰나와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은 우리사회의 단면에 뉘우침을 준다.
김할아버지 슬하에는 경북상주와 안동·서울·부산 등에 살고있는 친손 39명·외손 18명 등 모두 57명의 자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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