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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환율절상폭 커 수출기업 "몸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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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실 환율이니 원화절상이니 하는 말을 뭐 알기나 했습니까. 작년과 재작년을 지내 오면서 그 위력을 정말 피부로 실감했지요 .』
서울 서빙고동에서 기림이란 상호로 크지 않은 봉제의류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이원빈씨(53)의 말이다. 그는 이 회사를 10년 이상 꾸려왔으나 계속되는 원화절상으로 인해 채산성이 날로 악화, 작년 하반기부터 업종을 자동차부품 쪽으로 전환하고있는 중이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임금 및 각종 복지부문 비용이 늘어가는 추세 속에서 원화절상에 대처하느라고 고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년에 8.7%를 기록한 원화절상률은 지난해엔 15.8%로 그 속도에 가속이 불으면서 국내수출기업의 목을 죄어왔다.
원화절상이 기업에 주는 타격이 얼마나 큰가는 한은의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의 원화절상으로 국내 제조업체들의 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은 전년도의 3.58%에서 1.69%로 반감됐으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8천억원의 경상이익이 감소했다는 얘기가 된다.
원화가 절상된다고 모든 기업이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해외원자재를 들여다 제품을 만들어 국내에 파는 경우 원화절상으로 원자재 수입단가가 싸져 오히려 재미를 보게된다.
수출업체라도 원화절상분 만큼 제품의 수출단가를 올릴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
실제로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간 원화절상 폭은 11.7%이었던데 비해 수출단가 상승률은 평균 13.8%에 달했다.
원화절상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계속 늘고 무역수지흑자가 사상최고치인 1백10억 달러 정도에 달한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원화절상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수출단가 인상이 거래 상대방이 있는 만큼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신기술개발·제품고급화 등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단가인상은 거의 기대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하락(원화절상)은 제품이나 기업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중소수출업체에는 가혹한 영향을 미치게 되며, 대기업이라도 결정적인 수출제약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환율의 동향은 수줄비중이 GNP의 39%에 달하는 우리경제에는 그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가장 큰 관심은 올해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해 우리 나라 경상수지 흑자 폭이 1백40억 달러에 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올해 선진국들의 원화절상 및 시장개방압력은 더욱 거세어지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연종 한은 조사1부장은 올해 원화절상 추세가 조금도 늦추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원화가 경쟁국에 비해 (대만은 1.3%절상, 일본은 오히려 3.2%절하)큰 폭으로 절상됐다고는 하나 각국통화의 절상이 시작된 지난 85년 9욀 G5(선진 5개국정상회담) 이후의 절상 폭을 따져보면 일본이 80.7%, 대만의 42.5%인데 비해 우리는 아직 30.4%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작년 10월 미 재무성이 대의회보고서를 통해 우리 나라와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규정, 올 4월 중순까지 양국과의 협상결과를 의회에 다시 보고해야할 형편이기 때문에 절상압력은 1·4분기 중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 같은 분위기인 만큼 올해 환율이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것이냐는 전망도 밝지 않다.
삼성·현대·대우 등 국내 3대그룹도 연말환율을 연초보다 50∼60원 떨어진 6백20∼6백30원으로 보고 있으며 럭키금성그룹은 5백9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연말대비 14%정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무역협회가 8백55개 수출기업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연말·환율 전망치는 6백40원 안팎으로 나타났으며 중소기협중앙회도 이보다 20원정도 낮은 6백20원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환율하락·원화절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우리기업으로서는 계속되는 원화절상에 대비해 원가절감·기술혁신 등으로 경쟁력을 보장해 나가던가 아니면 수출시장을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좌승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그러나 그는 원화절상 압력에 대처하기 앞서 그보다 수입개방문제를 보다 절실하게 검토해 봐야할 때가 왔다고 강조한다.
수입개방을 통해 흑자폭 자체를 줄여 가면 선진국들의 통상압력도 한결 완화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무차별적으로 피해가 돌아가는 원화절상의 질곡으로부터 우리경제가 상당부분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올해 환율문제는 수입개방과의 함수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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