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우석칼럼

터키에서 한국을 생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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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직항으로도 12시간이 걸린다. 오후 11시에 도착해 창밖을 내다보니 아타튀르크 공항이란 네온사인이 선명하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아타튀르크라면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존칭이 아닌가. 건국의 아버지란 뜻으로 의회가 헌정한 이름이다. 괄시받는 우리의 초대 대통령 생각이 난다. 우리는 언제쯤 국제공항에 이름이 붙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을까.

터키에선 초대 대통령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었다. 모든 돈에도 초상화가 들어가 있고 수도 앙카라의 웅장한 영묘(靈廟)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기념관과 동상들이 있다. 심지어 이스탄불에 머물 때 임시 관저로 삼았던 초호화 돌마바흐체 궁전엔 모든 시계가 그가 운명한 오전 9시5분에 멈춰져 있다. 터키 건국에 케말 파샤의 공헌이 절대적이라 해도 사후 60여 년의 정치적 격변 속에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스타파 케말인들 약점이 없겠는가. 그러나 허물은 덮고 공적을 높이 기려 위대한 국부(國父)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터키에 가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매우 큰일을 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 잘못된 역사니 하는 말들을 듣다가 다소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터키 사람들은 한국이 정말 위대한 일을 했다면서 터키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터키는 우리보다 독립도 먼저 하고 30여 년이나 앞서 경제개발 계획을 시작했지만 아직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은 우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요즘 터키엔 원화 강세도 한몫해 한국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이스탄불 번화가에선 한국말로 "10달러, 엄청 싸다"고 외치기도 한다. 어느 가게 주인은 한글 학습서를 보여주며 지금 열심히 한글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에 갔을 때의 광경이 겹쳤다. 중국에서도 한국 관광객들을 부러워하며 나라 정책으로 한국이 잘살게 된 비결을 학습하고 있었다.

터키와 중국은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대제국이었다. 베이징(北京) 자금성에 가보면 한국은 그래도 가까운 나라라 하여 변방 나라보다 대접받은 자취가 있다. 터키 술탄이 외국 사신을 맞던 돌마바흐체궁엔 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이 터키를 방문했을 때 터키 조야(朝野)는 극진한 환대를 하며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옛 오스만 튀르크의 후예들로부터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이토록 대접받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옛 제국뿐 아니라 21세기의 강대국들로부터도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 건국 후 애써 이룬 눈부신 경제 발전 덕분이다. 우리가 역사상 이만한 대접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혹시 지금이 가장 절정이 아닌가 하고 걱정될 때가 많다. 터키가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대제국에서 영락(零落)했듯이 어느 나라든 부침(浮沈)이 있는 것이다.

동로마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엔 화려한 궁전과 대경기장의 유적이 많다. 용렬한 황제들이 긴장을 풀고 빵과 서커스의 포퓰리즘으로 치닫다 결국 멸망하고 만 것이다. 경기장 부근엔 '독일의 샘'이라는 아담한 분수가 있다. 19세기 말 동방 정책을 추진하던 독일의 빌헬름 2세가 터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스탄불을 방문해 기념으로 지어준 선물이다. 결국 터키는 독일 편에 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같이 싸우게 되었고 패전의 결과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게 된다. 복잡 미묘한 국제정치 게임에서 줄을 한번 잘못 서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요즘 터키는 매우 유연한 외교 정책을 펴면서 전략적 요충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난 방문 때 '막 이륙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큰 비행기'로 비유했듯이 터키는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터키 전국에 널려 있는 웅장한 옛 유적들을 보면 흥망성쇠의 법칙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한국도 그 법칙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