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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이 약속한 '10년 혁명'의 끝은 대권일까

중앙일보

입력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2018 서울 도시재생엑스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2018 서울 도시재생엑스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서울 안국동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년 서울 혁명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3선 임기를 마치면 2011년 10월 이후 총 11년을 재직하게 되는데, 왜 ‘10년’을 언급했을까.

‘10년’이란 표현이 어감상 입에 착 감기고 명료하기 때문에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것이란 해석이 많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박 시장이 대권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10년’이라고 한 것”이란 견해도 나왔다. 그의 임기는 2022년 6월 30일까지인데, 만약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선(2022년 3월 9일) 90일 전인 2021년 12월 9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이 계산에 따라 그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그의 시장 임기는 10년을 조금 넘는다.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박 시장의 다음 행보가 대선일 것이라는 데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광역단체장의 연임은 3선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민선 서울시장은 대부분 대선후보군의 반열에 올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7~31일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범진보 진영에서 박 시장은 12.1%로 1위를 기록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이런 결과는 박 시장의 개인 역량이라기보단 현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가 무주공산에 가깝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한 편이다. 경쟁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지난 3월 ‘미투(#MeToo)’ 파동 이후 도덕성 논란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다.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정계 복귀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지난 지방선거 전후로 ‘여배우 스캔들’ ‘조폭 연루설’ 등 각종 의혹에 시달리며 내상을 입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다크호스지만 ‘드루킹 사건’의 파장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마친 후 박원순 서울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박 시장은 현재 차기 '대권 잠룡'으로 평가받는 인물 중에는 유일하게 특별수행원에 이름을 올렸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마친 후 박원순 서울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박 시장은 현재 차기 '대권 잠룡'으로 평가받는 인물 중에는 유일하게 특별수행원에 이름을 올렸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 시장은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차기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가 여론조사 지지율이 부진하자 포기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엔 박 시장이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둬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약점으로 지적됐다. 그런 탓인지 그는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야전사령관’을 자처하며 더불어민주당 구청장·지방의원 후보의 승리를 앞장서 도왔다. 선거 전날 기자회견에선 “지난 두 번의 선거는 제 당선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했지만, 이번에는 당이 공천한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이제 제가 당과 거리가 있는 후보라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던 박 시장이 최근 당정과 엇박자를 내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 공공택지 공급을 늘려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정부 대책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박 시장을 만나 그린벨트 해제를 설득했지만, 박 시장은 11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환경포럼에서 “그린벨트 해제는 극도로 신중히 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토부는 21일 수도권에 330만㎡ 이상 신도시 4∼5곳을 추가로 조성하는 등의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 안은 뺐다. 하지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국토부의 해제 물량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며 서울시 그린벨트에 대한 ‘직권해제’ 가능성을 시사해 불씨는 남았다.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지난 여름 한 달간의 ‘옥탑방 체험’ 이후 내놓은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 등 강남·북 균형 개발 계획을 국토부가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꼬집으며 철회하게 하자, 이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한 여권 인사는 “박 시장은 이미 여의도·용산 개발 건에 대해 한 번 주저앉았기 때문에 결단력에 의문부호가 달린 상황”이라며 “이번에 또다시 그린벨트 건까지 쉽게 물러서면 대선주자로서의 브랜드 관리가 어려워진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3선에 도전하기 전 일부 측근으로부터 “행정가에서 탈피해 정치인으로 거듭나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았다고 한다. 대선 출마를 위해선 국회의원 재·보선을 통해 여의도에 진출하거나, 전당대회 출마로 당권을 노리는 게 낫다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벌여 놓은 일들을 마무리하는 게 먼저라는 이유로 고사했다. 그의 선택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앞으로 그가 펼칠 시정의 결과가 말해줄 전망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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