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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까먹는 벤처도 OK … 10억씩 쥐여준 우리은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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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손태승 행장

손태승 행장

‘창업한 지 40개월, 매출액 0원, 영업이익 마이너스.’

국내 은행 최초로 투자벤처 공모 #사업성·기술력·성장가능성만 봐 #12곳에 최대 10억씩 110억 투자 #담보 벗어나 새 수익원 발굴 나서

국내 은행권 최초로 투자 대상 벤처기업을 공모했던 우리은행이 최근 최종 선발한 12개 업체의 평균 ‘스펙’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신용 대출도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이들 업체에 업체당 최대 10억원까지, 총 11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은행의 통 큰 혁신벤처기업 투자가 은행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돌다리를 밟고 또 밟은 뒤에도 대출이나 투자 결정을 망설이는 것이 은행원의 본능이지만 우리은행의 행보는 이와 사뭇 다르다. 투자 심사를 담당했던 강영호 우리은행 혁신성장센터 부장은 “담보만 보고 투자하거나 대출하지 말고 기존과 다른 프로세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일하자는 손태승 행장의 정책 의지가 많이 반영됐다”며 “실무진에서도 투자 활성화를 위한 고민이 있었던 만큼 서로의 의중이 잘 맞아 떨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벤처투자 공모 포스터

우리은행 벤처투자 공모 포스터

하지만 투자 대상을 선별하는 건 어려운 작업이었다. 영업이익이나 매출 등 전통적 지표가 아니라 미래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모에 참여한 총 250여개 업체 중 선별된 12개 업체는 소프트웨어·플랫폼 업체가 6개, 제조업체 5개, 바이오 업체 1개다. 제조업도 전통적인 제조업체보다는 점자 보조, 반려동물 케어 등 신종 업체들이다.

우리은행이 가장 유심히 들여다본 건 역시 경영자의 자질이었다. 강 부장과 함께 심사를 맡았던 김태훈 투자금융부 부장은 “어디가 성공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업 대표의 역할과 철학이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가 됐다”며 “단순히 투자를 받아 ‘돈놀이’를 하려는 게 아니라 기술과 상품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대표가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또 다른 핵심 체크 포인트는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이었다. 강 부장은 “엔지니어 출신 대표들은 무조건 ‘새로운 기술’이기에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라며 “기술을 평가하는 게 30%라면 나머지 70%는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다음 달 중순 2차 투자 대상 기업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의 혁신 벤처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판교에 혁신기업 투자 발굴 업무만을 담당하는 지점을 만들고 지점장과 직원도 발령했다. 지역 중심으로 이뤄지던 지점장 업무와 달리 ‘판교 지점장’은 투자해도 좋을 혁신 기업을 찾아내는 역할 만을 전담하게 된다. 우리은행 측은 “‘판교’가 상징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그쪽에 지점장을 발령하는 것일 뿐, 성장이 가능한 혁신기업이라면 어디나 투자 발굴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강 부장은 “앞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은행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미래 수익 발굴 측면에서 은행권의 ‘메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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