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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권력자와 결별해야 재판 독립된다’는 지적 새겨들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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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어제 퇴임사에서 “재판소 구성권자(대통령·대법원·국회)와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지녀야 재판의 독립은 확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성을 바탕으로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헌법 재판을 부탁드린다”고도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법부에는 권력자로부터의 독립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날 모두 5명의 재판관이 퇴임하면서 신임 헌재소장을 비롯한 후임자들에 대한 국회의 처리가 있을 때까지 헌재는 사실상 기능이 마비되게 됐다. 특히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석태·이은애 후보자에 야당은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 재판관 인사가 정치적 쟁점이 될 조짐도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지난해 파격적으로 임명된 김 대법원장은 그동안 ‘코드 인사’ 논란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삼권분립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을 자초했다. 지난주 사법부 창설 70주년 행사 때 문 대통령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의 재판 거래 등 사법 농단 의혹을 질타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힌 게 대표적이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행정부의 권력 남용이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는 것이 김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일선 판사들의 주장이다.

김 대법원장은 또 김소영 대법관 후임으로 민변 소속 변호사,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 등 세 명을 내세웠다. ‘적폐 청산’이란 명분을 내세워 자기 사람 심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등 14명의 대법관 중 세 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상황에서 또 자신이 몸담았던 연구회 소속 후배 판사를 지명한 셈이다. 사법행정을 바로잡겠다며 사실상 ‘인적 청산’을 하는 것은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 최고법원의 가치를 추락시킬 뿐이다. 미국 대법원의 경우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낙태·이민·동성결혼 등을 둘러싸고 개인의 인권 보호냐 국가의 역할 강조냐 같은 가치판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어느 진영 출신이냐에 따라 지나치게 정파적으로 치우치고 있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결국 민주주의를 해치는 요인으로 확대재생산될 수 있다.

지금도 과거 법원행정처 소속 법관들이 검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불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사법부는 침묵 속에 외면하고 있다. 더 이상 정권의 입맛에 맞출 게 아니라 침몰하고 있는 법원을 위해 진정성 있는 말과 행동을 해 줬으면 한다. 사법부의 존재는 권력과 긴장관계에 있을 때 빛을 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