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역청문회」 좀 해봅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어린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아마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답이 부쩍 많을 것이다. 그 만큼 지난 정기국회 활동을 보면 권력이 어디 있는가를 실감할 정도로 국회는 막강하고 의원의 위세는 드높았다. 국회활동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뭐니뭐니 해도 청문회였다.
한 시절을 뜨르르 울리는 인물들을 증인석에 앉혀놓고 묻고 따지고 으르고 훑고 쓸까스르고 쓰다듬는 의원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나오고 부럽기까지 했다.
TV로 의원들의 이런 눈부신 활약을 보고 감탄하면서 한가지 강렬하게 받는 충동은 바로 저분들을 증인석에 앉혀놓고 한번 청문회를 해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의원들에 대해 궁금하고 물어보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질타하는 동헌마루의 사또 같기도 하고, 법정의 재판장 또는 검사 같기도 한 저분들은 누구인가, 왜 저런 식으로 묻고 저런 정치는 왜 나오는가 하는 궁금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제 올해의 청문회도 끝난 만큼 어떨까, 거꾸로 의원들을 증인석에 앉혀놓고 따지는 청문회-, 이름하여 「역청문회」 같은 것을 통해 궁금한 일들을 물어본다면.
만약 역청문회 같은 것이 열려, 가령 이런 신문에 이런 증언이 나온다고 가상해 본다면 망발이 아닐지 모르겠다.
-청문회에서 보면 증인 호칭에 「증인」 「증인님」 「우리 증인」 「이×아」 등 몇 등급이 있던데 등급 조정은 어떻게 하는가.
『증인을 척 보면 등급은 절로 나온다. 그 정도 모르고 의원을 할 수 있나.』
-센 사람에게 설설 긴 것은 신세를 졌기 때문인가.
『신세진 것은…기억에 없다.』
-자기 말만 실컷 하고 증언을 가로막는 이유는.
『내말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에 뻔한 증언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규명보다는 소신 발표에 속셈이 있었는가.
『많은 유권자들이 TV를 보고 있는 터에 정치인으로서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세비는 왜 올렸다가 내렸는가.
『의원들은 신축 자재하다. 여론이 일지 않으면 올리고 여론이 나쁘면 내린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국민들이 의원 호주머니 사정을 너무 몰라주어 야속하다.』
-민정당은 해직 공직자 보상·복직법안이 상위에서 통과될 때엔 가만있다가 왜 나중에 법석을 떨고 거부권 발동까지 하는가. 어딘가 나사가 좀 풀린 것 같은데….
『그때 반대할걸 깜빡 잊고 그만….』
-그래서 고위층 꾸지람을 받았는가.
『그렇다.』
-3야당은 거부권 발동을 뻔히 내다보면서 통과시킨 것은 인기 영합이 아닌가.
『80년 해직은 엄연히 불법이니 그 분들의 명예회복·피해보상은 당연하다.』
-그 점은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그전에 정부 보상안을 예산심의에서 동의한 까닭은 뭔가. 여야가 다 일관성이 없다.
『…그때는 상황이 달랐다….』
-전액보상을 하자면 정부산하단체 임직원을 포함해 5천9백억 원이 들고 여기에 광주 피해보상 1천억 원, 삼청대 보상 수백억 원이 드는 등 일은 딴사람이 저지르고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오는데 정치권은 국민 돈으로 선심 쓰는 경쟁만 하는 건 아닌가.
『그런 건 아니지만 타당은 자꾸 나서고……외부압력은 거세고 해서….』
-80년 부정축재로 뺏긴 재산을 반환하라는 소송이 나오는데 이러다가는 5·16때나 유신 때의 피해자까지 보상을 요구하는 현상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5공 청산 작업은 언제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
『진실규명은 해야하고…각 당의 생각은 다르고….』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협상도 하고 영수회담도 하는 등 정치권이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려고 하지만 아직 시기나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다.』
-그 시기나 조건은 국민을 생각한 것인가, 당리당략적인건가.
『모르겠다.』
-재무위에서 부실기업 정리에 대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한다더니 왜 흐지부지됐는가.
『야당끼리 손발이 안 맞고 해서….』
-설마 무슨 말못할 까닭이 있는 건 아닌지….
『전혀 사실과 다르다.』
의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지금까지 몇 가지 화제 거리를 놓고 잠시 가상의 「역청문회」를 그려봤지만 실제로는 신문도 증언도 이런 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꼭 이런 질문은 아니더라도 의원들과 정당들에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란 점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국회가 무엇을 하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국회 의사야 어떻든 권력이 먼저 결론을 내려놓고 국회는 그저 요식과정인 「고무도장」에 불과했다.
그런 국회에서 어떤 무리나 억지가 나오고 소란이 벌어지더라도 국정의 큰 줄기에는 영향이 없었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오늘의 국회는 다르다. 국회의 실수, 국회의 억지는 바로 국정의 실수, 국정의 억지가 된다. 국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책임감 있고 더 믿을만한 국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회가 국정의 중심이 된 원년이었던 88년이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국회와 의원들은 그 어떤 「역청문회」의 신랄한 추궁에도 끄떡없이 증언할 수 있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