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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새 메카 대구…세계 스타 연광철이 무게 더했다

중앙일보

입력

14일 대구에서 오페라 '돈 카를로'의 필리포 2세로 출연한 베이스 연광철.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14일 대구에서 오페라 '돈 카를로'의 필리포 2세로 출연한 베이스 연광철.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14일 대구 칠성동의 대구 오페라 하우스. 베이스 연광철(53)이 오페라 ‘돈 카를로’의 필리포 왕으로 출연했다. 1994년부터 10년 동안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속 가수였고,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으며 지금도 미국부터 유럽까지 전세계를 무대로 노래하고 있다. 대구 무대에서 연광철은 세계적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했던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연광철이 연기한 스페인의 필리포 왕은 아들의 약혼자를 빼앗고 폭력적 정치를 펼친다. 연광철은 단지 필리포 왕의 힘과 권력, 폭력성만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 등장한 1막 후반부부터 권력이 가져온 불안함을 노래와 연기에 섞어 넣었다. 소리 또한 힘 때문에 빛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힘을 뺀 소리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자신과 어린 시절 결혼했던 왕비의 옛 눈동자를 기억하며 자신의 흰머리를 쓰다듬는 노래에서는 저음 가수의 힘 대신 오페라 가수의 묘사력을 돋보이게 했다.

이처럼 인물의 심리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는 발성 방식은 3막의 베이스 2중창도 서라운드 사운드로 들리게 했다. 결과적으로 연광철의 필리포 왕은 복합적인 인간으로서 청중에게 호소했다. 필리포 왕의 쓸쓸한 독무대인 3막 오프닝이 끝난 뒤 오페라가 진행될 수 없을 정도로 환호가 쏟아졌다.

고급스러운 소리와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 두 성악가 베이스 연광철(왼쪽)과 소프라노 서선영.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고급스러운 소리와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 두 성악가 베이스 연광철(왼쪽)과 소프라노 서선영.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돈 카를로’는 올해로 16회째인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의 개막작이었다. 연광철은 국내에서 제대로 볼 기회가 별로 없는 성악가였다. 물론 독창회 무대는 꽤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오페라 무대에서 나온다. 캐릭터에 대한 분석과 작품 전반에 대한 이해로 무대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연광철은 오페라에 세 번 출연했다. 2006년 모차르트 ‘돈 조반니’, 2013년 바그너 ‘파르지팔’, 2015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무대였고 모두 서울이었다. 이번 대구 무대는 연광철의 첫 지역 오페라였고 첫 베르디 국내 공연이었다. 연광철은 공연 후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제작하는 오페라는 대개 1년 전쯤 출연자 캐스팅을 한다. 유럽에서는 이미 3~4년 전에 스케줄을 짜기 때문에 한국의 오페라에 출연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에만큼은 특별히 출연했다. 이번에도 해외 스케줄이 겹친 연광철은 대구 무대에 서기 위해 외국 공연을 취소했다. 미리 계약돼 있던 오스트리아 빈과 호주의 극장에 양해를 구하고 연습을 하기 위해 5주 전부터 한국에 들어왔다. 주최 측에서 애초에 요청했던 것보다 2주 더 시간을 냈다. 연광철은 “기회가 되면 대구의 오페라에 출연하고 싶었다. 대구와 이미 ‘돈 카를로’를 함께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었다”고 말했다.

대구 오페라 하우스는 지난해 베를린 도이치 오퍼와 함께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콘서트 공연을 제작했다. 마침 한국에 있던 연광철은 독일의 동료들이 출연하는 이 공연을 보러 왔고, 올해 대구 오페라의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다. 연광철은 “국제 오페라 페스티벌이라는 건 한국에서 대구에만 있다. 자체 오페라 하우스도 가지고 있으며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까지 별도로 운영하며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도 놀랐다”고 했다. 국내 오페라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동력이 대구에 있다는 판단한 셈이다.

실제로 14일 개막 무대에서는 대구 오페라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 선택부터 지방 오페라의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돈 카를로’는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도 어둡고 무겁다. 남녀 간의 사랑, 동년배 남성들의 우정, 정치와 종교의 갈등, 위정자의 고뇌와 피지배 집단의 비극까지 거대한 주제들이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안에 겹겹이 들어있다. 이런 작품의 난해함에 비춰봤을 때 제작진과 출연진의 작품에 대한 집중도는 높았다.

연광철은 “‘돈 카를로’는 다른 작품에 비해 국내에서 많이 공연되지 않는 편이고 따라서 젊은 성악가들이 공부할 기회도 드물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을 오페라 제작 환경을 갖춘 대구에서 꼭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광철을 제외한 주역 가수들은 ‘돈 카를로’에 처음 출연했다. 하지만 소프라노 서선영(34)은 공연장과 오케스트라의 작은 결점도 덮을 정도로 풍부한 성량을 선보였고 바리톤 이응광(37)도 의리와 무게감 있는 귀족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테너 권재희(37)의 명징한 음성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한국 음악계의 오랜 숙제인 오케스트라 금관 악기의 취약함, 합창단의 드라마 부재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2018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의 '돈카를로' 무대.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2018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의 '돈카를로' 무대.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 국제 오페라 페스티벌은 올해 예산 20억5000만원으로 오페라 4개 작품과 콘서트 1회를 포함해 총 8회 공연한다. 다른 오페라 축제와 비교하면 재정이 안정적이고 해외 교류도 활발하다. 올해 콘서트 또한 베를린 도이치 오퍼와 함께 제작하는 R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다. 지역의 반응은 뜨겁다. 페스티벌의 유료 객석 점유율은 70~80%를 기록한다. 올해 '돈 카를로'는 14·16일 이틀 공연 동안 전체 객석의 약 87%를 유료 관객이 채웠다. 연광철은 “대구의 인구는 서울의 4분의 1 정도이지만 오페라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이 느껴진다. 좋은 여건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원도 계속된다면 오페라 문화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는 다음 달 19일 '라 트라비아타'까지 이어진다.

대구=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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