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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수행단' 현정화 "남북 교류, 탁구에선 뭐든 가능해"

중앙일보

입력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 [연합뉴스]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 [연합뉴스]

"처음엔 '내가 방북단에 왜 들어갔지' 하고 의아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단 생각을 가졌죠."

"13년 만의 방북, 상징 넘어 역할 하고 싶어" #"단일팀 넘어 초청 경기 등 왕성하게 오가야" #91년 세계선수권 파트너 이분희와 재회 기대 #"이산가족 같은 애틋한 느낌, 손 꼭 잡고파"

18일부터 2박3일간 평양에서 열릴 2018 3차 남북정상회담의 특별수행단엔 현정화(49)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 체육계를 대표해 차범근(65) 전 축구대표팀 감독, 평창 겨울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주장이었던 박종아(22)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지난 14일 청와대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 합류 제의를 받고 다음날 확정한 현 감독은 1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이 열린) 2005년 이후 13년 만에 방북한다. 그동안 평양이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기대감도 크지만 단순히 상징을 넘어서 남북 교류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고 말했다.

남북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을 구성했다. 사진은 원조 단일팀 현정화(오른쪽)와 북한 리분희가 1991년 4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일팀으로 여자복식 경기를 치르는 모습. [연합뉴스]

남북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을 구성했다. 사진은 원조 단일팀 현정화(오른쪽)와 북한 리분희가 1991년 4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단일팀으로 여자복식 경기를 치르는 모습. [연합뉴스]

현 감독은 스스로 "아마 남북 교류의 상징이라는 의미에서 수행단에 포함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의미처럼 그는 남북 체육 교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결성된 남북 단일팀의 주축 멤버로 활약해 북한의 이분희, 유순복 등과 함께 여자 단체전 우승을 합작해냈다. 당시 남북 단일팀의 사연은 훗날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화제를 모았다. 현 감독은 올해도 5월 스웨덴 세계선수권, 7월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등에서 결성된 남북 단일팀을 지켜봤다. 또 주정철 북한탁구협회 서기장 등 북한 관계자들과 적극 접촉하는 등 남북 탁구 교류에 직·간접적인 역할을 해왔다.

27년 만에 후배들이 결성한 단일팀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현 감독은 남북 탁구 교류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그는 "이달 초에 끝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단체전에선 북한이 2위, 한국이 3위를 했다. 이 선수들이 함께 힘을 합치면 얼마나 더 강한 팀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면서 "북한 선수들이나 관계자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개방됐다. 그만큼 함께 힘을 합쳤을 때 기술도, 정신력도 더 좋아질 여지도 충분해졌다. 다음 올림픽(2020년 도쿄)까지 2년이라는 시간도 남았다. 남북 모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남북 단일팀은 11월, 12월에도 스웨덴, 오스트리아오픈 등을 통해서도 결성될 예정이다.

16일 오후 2018 코리아 오픈 탁구대회 남북 단일팀 훈련이 펼쳐진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앞줄 왼쪽부터), 주정철 북한 탁구대표팀 선수단장, 강문수 대한탁구협회 부회장, 현정화 레츠런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2018 코리아 오픈 탁구대회 남북 단일팀 훈련이 펼쳐진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앞줄 왼쪽부터), 주정철 북한 탁구대표팀 선수단장, 강문수 대한탁구협회 부회장, 현정화 레츠런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현 감독 하면 파트너로 함께 했던 이분희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을 맡고 있는 이분희와 현 감독은 93년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후 수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엇갈렸다. 이 때문에 현 감독은 이번에도 이분희와의 만남에 조심스러워한다. 그는 "중요한 회담의 수행단으로 가기 때문에 내가 하는 역할만 충실하려고 한다. 이번엔 분희 언니를 만날 기대는 크게 안 하고 간다"고 말했다.

그래도 극적인 만남 가능성은 있다. 그는 이분희에 대해 "가족이 아닌데, 마치 이산가족을 북쪽에 남겨둔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 만났을 땐 어렸는데 이젠 눈가에 주름이 잡힌 아줌마가 다 돼서 만남을 기다린다"면서 "그냥 애틋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어떤 방법이든, 만날 기회는 언젠가 올 것"이라던 그는 "혹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된다면, 손 꼭 잡아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지내고 있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2018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남북 단일팀 혼합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장우진-북한 차효심 조가 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결승전을 펼칠 때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남북 단일팀 혼합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장우진-북한 차효심 조가 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결승전을 펼칠 때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남북 교류에 대해 "단일팀으로만 끝나선 안 된다. 단순한 보여주기 식이 아닌 실질적으로 남북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일팀 다음 단계에 대해 현 감독은 남북 간의 왕성한 왕래를 꼽았다. 그는 "남북을 서로 오가면서 더 자주 함께 훈련해야 한다. 이어 남북이 서로 대회나 리그가 있다면, 서로 초청하는 식으로도 경기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려면 이런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일팀 과정에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언급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그는 "남측 4, 북측 1이 됐든, 남측 1, 북측 4이 됐든, 남북 선수들이 지속적인 경쟁을 통해 잘 하는 선수들로만 뽑아서 나간다면,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 감독은 "스포츠가 남북 관계 발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스포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할론도 언급했다. "우리가 더 많이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 현 감독은 "물질적으로 더 나은 입장에서 북측에 도움을 준다면, 반대로 우리는 기술적인 면에서 북측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단일팀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한 현 감독은 "남북 교류의 선봉에 서서 더 많은 볼거리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내게 주어진 역할이 생기면 노력을 다하겠다. 탁구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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