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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결수 집단 탈주|공범 한 명 행방 아직도 오리무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대낮 호송버스를 탈취, 서울시내를 전전하며 만9일 동안 인질·납치·경찰 대치극을 벌여 1천만 서울시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뒤 끝내 유혈·참극으로 막을 내린 지난 10월8일의 「탈주범 사건」.
이 사건은 우리 교도·법원·치안행정의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범인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한동안 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당시 탈주범 12명 중 아직껏 검거되지 않고 있는 범인은 김길호(21) 1명뿐.
김은 공범들이 북가좌동 고영서씨 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며 최후의 발악을 하던 10월16일 밤 수사본부에 자수의사를 밝히는 전화를 걸어온 뒤 종적을 감춰 현재 서울시경 강력계· 도범계 형사 2O여명으르 구성된 전담반이 수사를 펴고 있으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경찰과 끝까지 인질 대치극을 벌이다 권총자살·사살된 주범 지강헌과 한의철·안광술 등은 사건 3일 뒤인 10월20일 벽제 화장 장에서 화장돼 한 줌의 재로 변한지 오래.
주범 강영일등 경찰에 검거·자수했던 나머지 8명은 사건직후 재 탈주 등을 우려, 곧바로 영등포구치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옮겨졌으나 아직껏 눈치밥(?) 을 먹으며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불청객 탈주범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탈주범 인질가정은 지금까지 그날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이들 가정 대부분은 사건직후 법무부 교정국 등으로부터 응분의 물질적 보상은 받았지만, 현재까지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있다.
범인들이 처참한 최후를 맞았던 북가좌동 고씨 집은 온 가족이 사건직후 13일간이나 병원에 입원했으나 한의철·안광술이 권총 자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둘째·넷째 딸은 요즈음도 잠자다 헛소리를 할 정도.
이에 비해 당시 인질로 잡혀 탈주범들이 목에 칼을 들이대는 극한 상황에서도 범인들을 침착 대담하게 설득, 모 월간잡지에 『탈주범들과 애인관계가 아니냐』는 추측기사까지 게재됐던 큰딸 선숙양은 아무 흔들림 없이 여전히 직장일등에 성실해 주위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러나 9백만원 전셋집에 살던 고씨 집은 현상금 8백만원(1인당 2백만원)과 교도관 및 각계성금이 1천7백만원이나 답지한데다 서울시에서 목동 30평 아파트를 특별 분양해 줘 이번 사건으로 5천만∼6천만원은 보상받은 셈.
반면 고씨 집주인 박정숙씨(42·여)는 대지59평·건평50평 규모 2층집이 「탈주범 집」 으로 소문나는 바람에 싯가 1억5천여만원짜리가 반값에도 안 팔릴 지경이어서 탈주범 사건으로 가장 큰 재산피해를 보고있다.
범인들이 2박3일 52시간 동안 머물렀던 문정동 정해진씨 가족들은 현재까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적절한 보상마저 받지 못한 실정.
당시 범인들이 정씨의 결혼패물을 전당포에 50만원에 맡기고 정씨의 양복 2벌 등을 뺏어 달아났는데도 교정국은 사건 이후 50만원만 보상해주고 결혼패물은 범행 증거물로 압수해간 뒤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아 가족들은 애태우고 있다.
이밖에도 창천동 임석이씨 집과 안암동 손병녹씨 가족들은 밤 외출을 삼가며 TV프로도 탈주극이나 죄수 등에 대한 것이 나오면 황급히 채널을 바꾸지만 간혹 잠자다 가위에 늘리는 등 후유증이 남아있다.
한편 호송과정에서 신검을 제대로 하지 않아 탈주범들을 놓친 전 영등포교도소교감 김종업씨와 교사 김상녹씨는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구속 수감돼 지난 6일 1심에서 징역 1년을 구형 받았다.
또 탈주범 김동연이 숨겨놓았다는 보물을 찾기 위해 수 차례 수유동 현장을 답사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킨 전 성동 구치소 교도관 임재이씨는 법적 처벌근거가 없어 형사책임은 면했으나 공무원의 품위손상 등을 이유로 사건 직후 파면됐다.
탈주범 사건을 계기로 법무부는 교도관 처우를 대폭 개선, 1일1교대 제 확립을 의해 교도관 2천1백 명을 증원한다는 계획아래 내년에 1차로 25억원을 확보해둔 상태다. <최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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