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없는 집단민원 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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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 앞에 연일 시위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권 정치를 사시로만 보던 운동권 학생에서부터 농민·철거민·근로자… 심지어 현직교사들까지 집단적 의사표시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집단 민원사태는 야당 당사 역시 농성장으로 만들어 입구에서부터 이들이 먹는 라면·김치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유신 본당」을 자처하는 공화당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화당은 17일로 예정된 당사 이전계획까지 연말로 미루고있다.
특히 최근 교육관계법 개정과 관련, 교사들은 당사를 점거하고 자신들의 안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난 2일에는 김종필 총재 자택까지 진출해 구호와 노래를 외쳤다. 『당신들이 선생들이야. 정당은 각계 의견을 들어 정치에 반영하는 것인데 민주주의를 하자면서 물리력으로 자기 의견을 강요해. 당신들에게 2세 교육을 맡길 수 있어.』
격분한 김 총재의 질타에 시위교사들도 움찔해 물러났다.
정치 활성화와 함께 나타난 집단민원 빈발은 민성의 제도권내 수렴이란 긍정적 효과와 함께 소신 없는 인기 위주 정책의 양산 우려도 낳고있다.
각 당이 지향하는 이념과 노선에 따라 지지층이나 정책도 다르게 마련이나 여와 야, 독재와 민주란 양분법만 강요해온 지난 헌정사는 모든 것을 두부모처럼 자르듯 야가 아닌 것은 「기회주의」 「사쿠라」 「해바라기」라고 매도해 왔다.
그러나 「보수 본당」을 자처하는 당에 혁신적 정책을 물리력으로 강요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이념정당화를 막는 모순된 일인가.
여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보다 표를 의식해 소신을 잃어버린 기회주의가 더욱 경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다양한 이해가 얽혀있는 국가 중대사들이 집단행동에 의해서만 끌려 다닌다면 조용한 다수는 누구를 믿을 것인가.
각 정당은 「도당적」 성격을 초월한 분명한 색깔을 갖고 소신 있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김진국><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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