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 사이 난항…미국은 남북관계 속도에도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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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장관의 급작스런 방북 취소가 김영철 부위원장이 보낸 편지 때문이라는 보도에 이어 그 편지의 내용이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미국에 평화협정을 먼저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지난 7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시 김정은 위원장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고, 북한에서 종전선언을 주장해서 협상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북한이 관영 언론과 성명 등을 통해 미국이 종전선언을 약속해 놓고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현재의 상황이 종전선언과 북한 비핵화가 연결되어 있고,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의 문제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종전선언과 비핵화 연계됐나 #북, 미국에 종전선언 압박 높여 #미, 느린 비핵화 속도에 불만족 #빨라진 남북관계 속도에도 불만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날 오전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취소 결정에 앞서 열린 핵심 참모들과의 북한 관련 회의 관련 사진을 게시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 센터장,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폼페이오 국무장관,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전화로 합류했다. [사진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날 오전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취소 결정에 앞서 열린 핵심 참모들과의 북한 관련 회의 관련 사진을 게시했다. 왼쪽부터 트럼프 대통령,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 센터장,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 폼페이오 국무장관,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 마이크 펜스 부통령.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전화로 합류했다. [사진 댄 스캐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할 점은 현재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이 연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언론을 보면 종전 선언과 비핵화를 선후의 문제로 보고 미국이 양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종전선언이 되면 북한이 실질적으로 비핵화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종전선언이 곧 비핵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 이유는 아직 북한은 종전선언과 실질적 비핵화를 연계하는 데에 어떤 이야기도 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인식도 어느 정도 이러한 점에 기인한다.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미국의 인식에는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 3월∼7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이전까지는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가 가시권에 있다는 판단 하에 미국에서는 종전선언과 같은 정치적 요소는 비핵화의 진전과 거래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그러한 판단하에 김정은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미국에서는 제재의 유지가 보다 더 강력한 요인으로 보았던 것이다.

지난 7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 중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1박2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났다. [사진 노어트 대변인 트위터=뉴시스]

지난 7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 중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후 1박2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났다. [사진 노어트 대변인 트위터=뉴시스]

이러한 미국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폼페이오 장관의 7월 방북이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질적 비핵화 협상에는 아무런 진전없이 북한이 종전선언을 요구하자 미국은 종전선언과 같은 정치적 요소에 대해서도 더욱 부정적인 입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영철 부위원장은 종전선언과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조치 (핵 리스트 신고) 중에서 종전선언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 것이 아니고, 그와 관계없이 종전선언을 미국이 해야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폼페이오 장관의 7월 방북 이후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강한 회의론이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폼페이오 장관은 왜 북한을 또다시 방문하려고 했던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애당초 큰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낮은데도 말이다. 7월 폼페이오 장관이 직접 북한을 갔을 때에도 비핵화에 대한 협상의 진전이 없었는데, 그 아래 실무급에서 협상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더욱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7월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7월 평양을 방문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또한, 7월 방북 이후 미국에서는 북한에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어떠한 위임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 폼페이오 장관급에서는 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 있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비핵화 협상 카운터파트를 정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실무협상팀 구성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예정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만 하루를 머물지 않는 일정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북ㆍ미 사이에 어떠한 협상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다기보다 미국이 원하는 일정표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앞으로의 협상은 폼페이오 장관이 아닌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이끌 것이므로 그에 대한 카운터파트를 정하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편지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 조차 거절하는 내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3일 스티브 비건 포드 부회장(왼쪽)을 대북 특사에 임명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스티브 비건 포드 부회장(왼쪽)을 대북 특사에 임명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EPA=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올 초에 가졌던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고려한다면, 종전선언과 비핵화의 거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비핵화가 모두 끝난 이후도 고집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이 종전선언과 실질적 비핵화 과정을 연계하여 협상하고자 한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 있는 것으로 안다. 제재 역시 실질적 비핵화가 진행된다는 전제 하에 충분히 협상할 여지가 있다. 다만, 그 시작은 북한이 성실한 리스트를 제출한다는 데에 있는데, 현재 미국의 시각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면서 미국은 북한이 약속을 이행할 준비가 되면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하였다. 아마도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스티브 비건의 협상 상대를 정해서 알려달라는 뜻일 것이다. 그건 앞으로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장기적으로 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우리 정부의 남북 관계 발전 속도에 미국 정부가 불만스러운 이유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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