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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과학벨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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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이명박(MB) 정부와 충청권이 관련이 있는 대표적인 사업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행정도시(세종시) 백지화이고, 나머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건설이다. 행정도시 백지화는 MB가 노무현 정부의 업적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였다. 반면 과학벨트는 MB의 3대 공약으로 꼽혔다.

두 사업은 성격은 다르지만 관련이 많다. MB는 2009년 취임 직후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부 기관 이전만으로는 도시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이때 만들려던 기업도시에 과학벨트도 넣을 생각이었다. 세종시 수정안은 2010년 6월 국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MB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업도시 계획이 무산되자 MB는 과학벨트를 세종시와 인접한 대전시 유성구와 청주·천안 등 충청권에 만드는 거로 방향을 틀었다. 이래저래 세종시는 MB에게 푸대접을 받았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과학벨트는 문재인 정부 들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자유한국당 정용기(대전 대덕) 의원과 대전시에 따르면 내년도 과학벨트 예산(4868억여 원)은 당초 투자 계획보다 26.5%(1753억여 원) 줄었다. 이렇게 되면 과학벨트는 완공 시기가 2021년에서 최소 2년은 늦어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재부 방침에 따라 예산을 정한 것"이라며 "과학벨트도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과학벨트는 5조 7044억원이 투입되는 대한민국 최대의 기초과학 인프라 프로젝트다. 핵심 시설인 중이온가속기는 원자핵의 구조, 우주 생성 초기 상태 연구 등에 쓰이는 핵심 미래 과학기술로 꼽힌다. 과학벨트가 들어서면 20년간 212만여 명의 고용 효과와 약 236조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한다.

정권 교체기 때마다 ‘AB증후군(Anything but 과거 정부)’ 논란이 일었다. 이는 전 정권의 사업을 부정하거나 홀대하는 걸 말한다. 과학벨트가 ‘AB증후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하지만 대접받지 못하는 전 정권 사업임은 틀림없다.

가뜩이나 현 정부에 혁신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도 혁신성장 예산이 소득성장 예산보다 적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학벨트야말로 혁신 성장동력을 만드는데 좋은 소재다. 전 정권의 상품이라도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프로젝트를 과감히 추진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이념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우니 이쪽저쪽 눈치 볼 것도 없지 않나.

김방현 대전총국장